[뉴스토마토 한동인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보편관세'에 이어 '상호관세' 방침까지 밝히면서 '관세 전쟁'의 전선이 확대할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상 '무관세'에 해당하는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도 사정권에 들어간 모양새인데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무기화가 한·미 FTA의 '무관세'를 종료시키는 재협상이나,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증액 압박으로 다가올 전망입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역대 최고' 무역 적자 빌미…"바로 잡을 것"
10일 외교통상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적용의 폭을 미국과 교역하는 전체 국가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캐나다·멕시코·중국 등 특정 국가를 지목해 관세를 물리는 보편관세를 넘어 다른 국가와 무역에서 동등한 조건을 맞춘다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관세 부과 방식입니다.
상대국의 관세에 따라 미국도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건데, 유럽연합(EU)이 첫 타깃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U의 경우 미국산 자동차에 대해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미국도 똑같이 올리겠다는 겁니다. 미국은 유럽산 차에 2.5% 관세를 부과하고 있으니 이를 10%로 올리는 방식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미 FTA를 통해 대부분의 상품이 관세 없이 수출입됩니다. 개념적으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에도 무관세는 유지되는 셈입니다.
그럼에도 대한민국이 트럼프발 관세 전쟁의 사정권 안에 들어왔다는 평가를 받는 건 미국의 무역적자 때문입니다. 미 상무부 발표에 따르면 2024년도 미국의 무역 적자는 약 1325조원으로 전년 대비 17% 증가했습니다. 이는 역대 최대 규모입니다.
미국의 무역 적자를 순위별로 보면 중국이 2954억 달러로 1위, EU가 2356억 달러로 2위였으며 멕시코·베트남·아일랜드 등을 이어 한국이 660억 달러로 9위를 기록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같은 무역 적자 상황을 뒤집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그는 지난 2일 "장기적으로 미국은 사실상 전 세계의 거의 모든 국가로부터 갈취당해 왔다"라면서 "우리는 거의 모든 국가와의 무역에서 적자를 보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바꿀 것"이라고 적은 바 있습니다. 그는 미·일 정상회담 뒤에도 "만성적인 무역 적자는 미국 경제를 저해한다. 이를 바로잡을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9일(현지 시간) 미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시저스 슈퍼돔에서 열리는 2024-25 미국미식축구리그(NFL) 제59회 슈퍼볼 필라델피아 이글스와 캔자스시티 치프스의 경기 시작 전 관중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무기화'된 관세 압박…최악 땐 19조원 피해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은 한·미 FTA에 따라 품목을 기준으로는 99.8%, 금액을 기준으로는 99.1%의 상품에 대해 대미 관세를 철폐하기로 했으며 지난 2022년 3월 기준으로 98% 이상의 상품에 대한 관세 철폐를 완료했습니다.
수치상으로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관세를 부과할 근거가 부족한 건데요.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북미 FTA의 일종인 미국·캐나다·멕시코 무역협정(USMCA)에도 불구하고 25% 관세 부과를 압박한 바 있습니다. 결국 한국에도 한미 FTA 재개정을 요구하거나 비관세 장벽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반도체와 의약품, 철강·알루미늄 등 특정 품목을 대상으로 하는 관세 부과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중 미국의 한국산 반도체 수입 비중은 9.3%로 3위에 해당하고, 철강은 6.3%로 5위에 해당합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조치가 자국 내 제조업 생산 및 세수 증대,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를 목적으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관세 정책을 협상 수단으로 사용하는 '관세의 무기화' 전략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옵니다. 철강 부분과 관련해서는 추가로 기존 수입 물량 제한(쿼터제) 조치도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보편 관세 적용 시에는 전기·전자 등의 영역에서 우리 제품이 수혜를 입을 수도 있다는 분석이 있지만, 결국엔 경쟁력 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특히 최악의 경우 한국의 수출액이 약 19조원 넘게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그런데 상호관세는 법을 제정해야 도입이 가능합니다. 때문에 고관세 정책을 통해 다른 통상 협상에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한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로 캐나다·멕시코에 대한 25%의 관세 압박은 펜타닐 등 마약 문제와 국경 문제를 해소하는 카드로 활용됐습니다.
대한민국의 경우 FTA 재협상 카드 혹은 주한미군 방위비분담금 증액 요구로 돌아올 여지가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일 정상회담을 통해 방위비 2배 증액을 받아냈습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과 유사한 방식으로 미국의 부담을 줄이는 방위비분담금 청구서를 내밀 것이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트럼프 1기 당시 주한미군 철수가 방위비분담금 증액을 위한 압박 수단이었다면, 이번엔 관세가 무기화된 셈입니다.
한동인 기자 bbha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