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고령화 사회로 접어든 대한민국에서 ‘실버 세대’ 개념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기존 수동적 이미지에서 벗어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며 사회·문화·경제 중심축으로 이동하는 모습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경제력을 갖춘 은퇴자 집단을 중심으로 한 ‘능동적 시니어’, 즉 ‘골드 실버’들은 기존 ‘노인 세대’와 달리 사랑에 있어서도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관련 산업과 콘텐츠도 함께 성장하고 있으며, ‘시니어의 사랑’이 경제적 셈법에서 새로운 모델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실버 세대의 변화된 트렌드에 맞춘 다양한 콘텐츠들이 방송 매체를 통해 여러 형태로 선보이고 있다. 뉴스토마토.
콘텐츠가 주목 '실버 세대 사랑'
‘실버 세대’ 사랑 찾기는 이미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2024년 2월, 60~70대 싱글 남녀 8명이 짝을 찾는 러브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홀로 탈출’이 HCN 충북방송에서 방송됐습니다. 최고 시청률은 5.08%(디지털 케이블 플랫폼 전국 유료 가구 기준)를 기록했으며, 유튜브 채널에선 에피소드에 따라 50만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시청률을 통해 ‘실버 세대’ 사랑에 대한 높은 관심이 확인되자, 각 방송사는 비슷한 포맷의 예능 프로그램을 잇달아 선보였습니다. 같은 해 8월, 50세 이상 시니어들의 사랑 찾기 프로젝트 ‘끝사랑’이 종합편성채널 JTBC에서 방송됐으며, 최고 시청률 2.6%를 기록하는 등 많은 관심을 받았습니다. 프로그램 인기가 높아지면서 출연자들에 대한 관심도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이 과정에서 일부 출연자의 과거사가 논란이 되는 등 화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지상파 KBS에선 연예계 골드 싱글들이 자신의 진정한 인연을 찾아가는 ‘오래된 만남 추구’가 최근 방송을 시작했으며, 케이블 채널 tvN에선 방송인 주병진이 칠순을 앞두고 인연을 찾는 모습을 담은 ‘이젠 사랑할 수 있을까’가 방송되며 연일 화제입니다.
예능뿐만 아니라 창작 콘텐츠에서도 ‘실버 세대’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들이 줄을 잇고 있습니다. 최근엔 60대 이상 실버 세대의 연애 얘기를 다룬 웹드라마 ‘실버벨이 울리면’이 제작되었으며, 정다경 작가가 집필한 ‘오로라와 춤을’이 출판계에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나 홀로’ 가족 증가 → 황혼 결합 → 은퇴자 마을
이런 트렌드 변화의 주요 요인으론 ‘나 홀로’ 시니어 가구 증가가 꼽힙니다. 과거 대가족 중심 전통적 가족관에선 황혼 연애가 ‘남사스럽다’는 인식이 강했으나,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연애가 보다 자유로워졌습니다. 또한 황혼 연애와 재혼에 대한 사회적 인식 변화, 그리고 탄탄한 경제력 역시 실버 세대의 사랑 찾기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2023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1인 가구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는 60~70대로 전체 1인 가구 중 무려 38.7%를 차지했습니다. 혼자 사는 이유론 60대의 경우 ‘배우자 사망’이 42.6%로 가장 많았으며, ‘이혼’(25.4%)과 ‘혼자 살고 싶어서’(5.9%)가 뒤를 이었습니다. 70대에선 ‘배우자 사망’이 73.7%로 압도적이었으며, ‘혼자 살고 싶어서’(6.3%)와 ‘이혼’(5.9%) 순이었습니다.
황혼 이혼율 증가 또한 주목할 만한 변화입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결혼 기간 30년 이상 부부의 ‘황혼 이혼’이 10년 전보다 크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3년 9만4000건이었던 황혼 이혼 건수는 2023년 15만7000건으로 증가했으며, 혼인 기간별 이혼 구성비를 보더라도 30년 이상 부부의 이혼 비율이 2013년 8%에서 2023년 16%로 상승했습니다. 이는 부부가 자녀를 모두 성장시킨 후 갈라서는 ‘황혼 이혼’ 증가 현상을 증명하는 겁니다.
실버 세대 재혼 시장 성장
이런 ‘실버 세대’ 트렌드 변화는 결혼 시장에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기존 20~40대 미혼을 주 고객층으로 삼던 결혼정보회사(결정사)가 이젠 실버 세대 재혼을 새로운 시장으로 주목하고 있습니다. 일부 결정사는 아예 ‘황혼 재혼’을 전문 상품으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황혼 재혼을 주력으로 내세운 한 재혼 전문 결혼업체 관계자는 “과거엔 40대 후반에 이혼을 하더라도 재혼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평균 수명이 증가하면서 신체적으로 건강하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노년층에서 재혼을 원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면서 “이들은 단순한 재혼을 넘어 삼혼과 사혼도 주저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결혼 산업에서 실버 세대 영향력이 강해진 이유는 고령화 사회에서 노년층 인구가 증가했기 때문입니다. 인구가 많아진 만큼 소비 시장에서도 실버 세대가 주요 고객층으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3년 주민등록 인구 통계에 따르면, 같은 해 9월 말 기준 60∼69세 인구는 777만242명으로 집계되었습니다. 반면 40~49세 인구는 776만9028명이었습니다. 2008년 인구 통계 작성 이래 처음으로 60대 인구가 40대 인구를 넘어선 것입니다.
맹성규 민주당 의원은 '은퇴자 마을 조성 특별 법안'을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대표 발의했다. 맹성규 의원실.
황혼 결합 → 주거 시장 변화
사랑 찾기에 적극적인 실버 세대의 태도 변화는 결혼만 아니라 주거 시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입니다.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새로운 사랑과 건강한 노년을 위한 맞춤형 주거 모델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정치권에서도 이 같은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맹성규 민주당 의원은 고령자와 베이비부머 은퇴 세대의 주거 다양성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은퇴자 마을 조성 특별법안’을 22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대표 발의했습니다.
맹 의원은 “은퇴자 도시는 다양한 시니어 주거 형태를 하나의 단지에 모은 노인 주거 복합 단지로, 의료·식사·오락·운동·커뮤니티 시설까지 포함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공통된 관심사 기반의 커뮤니티 형성과 종합병원 수준의 의료 인프라 구축을 통해 정서적 고립감을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과거 자녀를 위해 헌신했던 ‘수동적 노년’에서 벗어나 주체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능동적 골드 실버’. 실버 세대가 제도권 중심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