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2월 윤석열정부는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갑작스럽게 의과대학 2000명 증원 계획을 발표했다. 표심을 노린 포퓰리즘 정책이라는 비판도 거셌지만, '의료개혁'이라는 그럴듯한 키워드로 초반 추진 동력은 뜨거웠다. 당시 전공의 병원 집단 이탈과 의대생 수업 거부 초기만 해도 정부는 "강력한 행정 처분과 사법처리, 학칙에 따른 처분" 등을 천명하며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하지만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한 의료개혁은 1년여간 의정 갈등으로 얼룩졌고, 우리 사회는 큰 희생을 치렀다. 특히 중증 환자를 담당하는 대형 병원이 전공의들의 이탈로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면서 상당수 환자가 목숨을 잃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지난해 의료 공백으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환자는 2~6월에만 3136명에 달했다. 정부는 의료대란 해소에 3조3000억원의 혈세까지 쏟아부었다.
그러나 1년여 시간이 지난 오늘, 정부는 내년도 의대 정원을 증원 전 규모인 3058명으로 되돌리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사실상 '백기 투항'이고, 의료개혁의 핵심인 의대 증원이 원점으로 돌아가면서 의료개혁도 '실패'한 셈이다. 지난 1년간 '의료계 버티기'와 '정부 양보'만 반복하다가 결국 집단 이기주의에 항복하고 말았다.
정부는 한발 물러서면서 3월 내에 의대생들이 전원 복귀해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강경파' 의대생들은 여전히 투쟁 의지를 밝히면서 의대생 복귀가 현실화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심지어 김택우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지난 8일 열린 전국광역시도의사회장협의회에서 "내년엔 의대생을 한 명도 뽑지 말아야 한다"고 밝히면서 의료계 오만까지 보여줬다. 의대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국민 모두를 분노케 하는 오만한 행태다.
의료계 오만은 정부가 키운 측면도 있다. 과거 김대중·박근혜·문재인정부 당시에도 의료개혁이 추진됐지만, 그때마다 의료계의 의료파업을 포함한 강력한 집단행동에 밀려 물거품이 된 나쁜 선례를 남겼다. 실제 2000년 의약 분업, 2020년 의대 증원·공공의대 신설 논란 당시 집단 휴진으로 정부 계획을 무산시킨 전례가 있다. 그만큼 정부 책임이 무겁다는 뜻이다. 물론 '정부는 의사를 이기지 못한다'는 의료계의 오만과 도덕적 해이 역시 비판받아 마땅하다.
국민들은 백기 든 정부에 또다시 실망한다. 동시에 '의사 불패'를 정부가 시인하는 꼴이 되면서 분노도 감추지 못한다. 더불어 윤석열정부의 의료개혁도 빈 수레가 요란한 것처럼 실속 없이 끝났음을 오랫동안 새길 것이다.
박진아 정책팀장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