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정부 재정은 국가의 혈액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혈액이 몸속을 건강하게 순환해야 생명을 유지하듯, 재정도 제대로 운용하지 않으면 국가의 체력은 급속히 소진되죠.
재정은 늘 동전의 양면 같은 요구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성장과 분배, 현재와 미래, 효율과 형평이라는 울타리에서 말이죠. 이중 어느 한쪽으로 기울게 되면 체계 전체에 불안정성을 불러옵니다.
때문에 균형 잡힌 유연성을 구현해야 하는 게 정책당국의 큰 고민일 겁니다. 재정은 단순한 숫자 관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신뢰 자산이니깐요. 신뢰 없는 재정은 채무만 남기고 신뢰 있는 재정은 사회적 자본을 남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갈수록 재정의 현실이 분명 쉽지 않다는 점입니다. 혹자들은 오늘의 선택이 다음 세대를 옥죄는 짐이 될 수 있다고 우려를 표명합니다.
지난 5일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이 장을 보고 있다. (사진=뉴시스)
그렇다고 쓰지 말아야 하나요. 위기와 기회의 갈림길 놓인 K-재정은 지금 거대한 전환점에 서 있는 것 같습니다. 저출산, 고령화로 사회안전망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는 데다, 기후위기와 더불어 새로운 산업 전환의 미래 투자는 늦출 수 없는 시대를 맞고 있기 때문이죠.
특히 산업 전환을 위한 전략적 투자, 즉 인공지능(AI), 반도체, 바이오, 친환경 에너지 등 미래 먹거리를 위한 정부 예산은 단순한 재원이 아닌 민간 투자와 시너지를 내는 '마중물'로 집중되고 있습니다.
새 정부의 국정 과제 이행을 담은 내년 예산안이 대표적입니다. 예산안을 국가 철학의 거울로 얘기하곤 합니다. 국가 철학은 공동체 자산에 대한 국민 신뢰를 바탕으로 시간 철학의 산물이 돼야합니다. 오늘 걷은 세금을 오늘의 문제에만 쓸 수도 있지만, 내일을 위한 씨앗으로 투자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새 정부의 예산안을 보면 전략적 우선순위의 명료화로 옳은 방향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평가해봅니다. AI 전환·신산업 연구개발(R&D) 화력에 집중할 출발점에서 산업 생태계 전반의 회복을 기대하거나 민생 안전망에 대한 의지가 뚜렷하죠.
그런데 말입니다. 국채 이자인 나랏빚 이자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국채 이자 눈덩이라는 둥, 이자 가중 적자 악순환이라는 둥, 올해 30조가 넘을 거라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내년 예상 이자지출과 GDP 대비 비율을 기반으로 인플레이션 2~3% 추가 발생 때 국가채무 부담은 얼마나될까요. (사진=뉴시스)
국민의힘도 '유래 없는 빚잔치', '빚더미', '국민 부담 가중'을 기치로 날선 비판을 쏟아냈습니다. 문재인정부 동안 연평균 국가채무는 69조원 규모입니다. 당시 국채 이자는 18조원대였습니다. 국힘 세력의 집권 기간인 2011년~2016년, 2022년~2024년의 연평균 국가채무는 49조원 수준입니다. 국채 이자는 21조원이죠. 그들이 말하는 국채 이자 눈덩이는 국힘도 자유로울 수 없죠. 돈은 안 쓰고 이자만 더 물어주는 살림살이를 했습니다.
더욱이 문재인정부 2021년 국채 이자 지급액 추이는 19조원입니다. 2022년 윤석열정부 21억원대는 할 말이 있을까요.
20조원을 넘긴 윤석열정부는 지난해 28조원을 넘어선 바 있습니다. 2023년도 기획재정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추경호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뱉은 말은 '금리 상승 영향'이었습니다.
국가채무를 유지하기 위해 매년 정부가 예산에서 지출하는 이자비용은 이자 지급액입니다. 이는 한 나라의 GDP에 대비해 비율이 달라집니다. GDP는 그 나라의 생산성인 모든 최종 재화와 서비스의 시장가치 총합을 의미합니다. 생산, 지출, 소득의 값을 계산하는 관계로 그 나라의 부를 얘기하는 겁니다.
한마디로 소득이 늘면 이자 증가에 대응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얘기죠. 문재인정부 기간 GDP 대비 이자 지급 비율은 1%를 넘기지 않는 0.9%를 유지해왔습니다.
박근혜정부 때는 어땠나요. 모두 1%를 넘긴 비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윤석열정부 때도 2023년 1%, 2024년 1.1%로 올랐습니다.
국가가 진 빚을 줄이는 방법은 크게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우선 두 가지를 보면, 국민에게서 더 걷어 원리금을 갚는 방법, 예산을 줄여 채무 상환에 투입하는 방식이 있죠. 국민들이 도탄에 빠졌는데 이 방법을 쓰면 어떨까요.
지난 4일 대구 달서구 대구학생문화센터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25 교육기부 진로체험 인증기관 박람회’를 찾은 중학생들이 AI 인공지능 부스에서 로봇 탐사 체험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마디로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전 정부가 그 어떤 전략도 없이 쓰던 기술이죠. 또 다른 방식은 GDP를 키워 채무·GDP 비율을 자연스럽게 낮추는 방식입니다. 이를 우리는 성장을 통한 경감이라 말하죠.
또 하난 인플레이션입니다. 화폐가치를 낮춰 채무의 실질 가치를 줄이는 방식입니다. 채무는 보통 명목 금액으로 고정됩니다. 물가가 오르면 돈의 실질 가치는 떨어집니다.
100조원을 받을 채권자가 있다면 실제 구매력이 줄고 채무자인 정부 입장은 그만큼 부담이 줄어 빚을 갚는 효과가 발생합니다.
한국의 국가채무는 GDP 대비 50%대 초반 수준이나 저금리 시절 발행한 고정금리 국채가 많습니다. 중간 정도의 인플레이션은 정부 채무 부담을 줄이는 데 유리한 구조죠. 때문에 금리 급등, 외국인 자본 이탈, 환율 방어 등에 주력적으로 대응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얘기는 빼놓고 올해 채무 이자 30조원 전망에 대한 절댓값만 얘기하고 있으니 무지해도 보통 무지한 게 아니죠. 채무 이자 절대액이 급격하게 오르는 것만 보면 겁이 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상환할 수 있는 능력치를 따져야 합니다. 비율은 변화가 없을 거니깐요.
우리나라 내년 예상 이자지출과 GDP 대비 비율을 기반으로 인플레이션 2~3% 추가 발생 때 국가채무 부담은 어떨까요.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지 않아도 국가채무의 실질 부담 완화가 단기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은 높습니다.
'국채발행 따른 이자 지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류덕현 대통령실 재정기획보좌관이 말한 것도 이런 맥락을 내제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씨앗을 빌려서라도 뿌린다'는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강조한 것도 경제를 되살리기 위한 미래 세대의 기회비용을 의미하고 있다고 평가해 봅니다.
류덕현 재정기획보좌관이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규하 정책선임기자 judi@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