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장수를 기대하는 게 이상하지 않은 ‘호모 센테나리우스(Homo Centenarius)’ 시대. 우리는 단순히 오래 사는 것을 넘어 ‘건강하게’ 오래 사는 것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100세 시대에 특히 중요한 것은 정신 건강을 좌우하는 뇌의 상태입니다. 노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치매나 인지 기능 저하를 노화 과정에서 가장 두려운 변화로 꼽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뇌의 시계를 늦추거나 되돌릴 수 있을까요?
탱고 같은 파트너 댄스는 노화에 취약한 뇌의 연결부분 보존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뉴시스)
최근 칠레 산티아고 아돌포 이바녜스대(Universidad Adolfo Ibañez) 연구팀이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에 발표한 연구 논문 ‘창의적 시간과 뇌 시계(Creative experiences and brain clocks)’와 이를 심도 있게 다룬 <워싱턴포스트>의 특집 기사는 그 해답이 거창한 의학적 처방보다 우리의 일상 속 ‘창의적 활동’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이 두 자료를 바탕으로, 노년의 뇌를 젊게 유지하는 과학적 원리와 실천 방법을 정리합니다.
브레인 클락으로 뇌 나이 측정
뇌 건강과 노화 상태를 가늠하기 위해서는 먼저 뇌의 나이를 측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가 갈 때마다 한 살씩 더하는 실제 나이, 혹은 연대기적 나이(chronological age)와 뇌 나이(brain age)는 다릅니다. 어떤 70대는 50대의 뇌 기능을 보이는 반면, 어떤 50대는 70대의 뇌 상태를 보이기도 합니다.
아돌포 이바녜스대 연구팀은 전 세계 1467명의 건강한 참가자들의 뇌 활동 데이터를 분석하기 위해 ‘브레인 클락(Brain Clocks)’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뇌파와 뇌의 다른 영역들이 시간적으로 동기화되어 활성화되는 정도인 기능적 연결성 데이터(functional connectivity data)를 AI로 분석해 개인의 뇌 나이를 추정하는 기술입니다. 연구의 핵심 지표는 ‘뇌 연령 격차(Brain Age Gap, BAG)’였습니다. BAG는 뇌 나이에서 실제 나이를 뺀 것입니다.
BAG 수치가 마이너스라면 실제 나이보다 뇌가 젊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지연된 뇌 노화(Delayed Brain Aging, DBA)’라고 합니다. 연구진은 이 지표를 활용해 특정 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뇌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얼마나 젊은지를 정량적으로 측정했습니다.
연구는 뇌 노화를 늦추는 활동을 네 가지로 제시했는데, 공통점은 단순한 두뇌 훈련이 아니라 예술적·창의적 경험을 동반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음악입니다. 악기 연주는 시각·청각·운동 정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므로 여러 뇌 영역을 한꺼번에 활성화해 신경망의 연결성을 강화합니다. 연구에서도 음악 활동에 꾸준히 참여한 사람들의 뇌가 더 젊게 유지되었습니다.
둘째는 춤, 특히 탱고 같은 파트너 댄스입니다. 춤은 리듬 감각, 공간 지각, 즉흥적 움직임 등 복합적 자극을 통해 전두엽과 소뇌를 활발하게 만듭니다. 실제로 탱고 댄서들은 노화에 취약한 뇌 부위의 연결성이 더 잘 보존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셋째는 그림 그리기 같은 시각 예술입니다. 형태와 공간을 인지하는 능력을 높일 뿐 아니라, 창의적 구상과 세밀한 손 움직임을 통해 뇌의 미세 운동회로까지 자극합니다.
뇌 젊게 만드는 창의적 활동들
넷째는 스타크래프트나 롤 같은 전략 비디오 게임입니다. 복잡한 자원 관리와 실시간 판단, 멀티태스킹이 요구되어 주의력과 집행 기능을 담당하는 회로를 단련하는 효과가 확인되었습니다.
뇌의 나이를 정량적 데이터를 분석하여 측정하는 ‘브레인 클락’의 개념도. (이미지=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 논문 발췌)
그렇다면 왜 하필 '창의적 경험'일까요? 연구진은 ‘신경 가소성(neuroplasticity)’과 ‘효율성(efficiency)’에서 그 원인을 찾았습니다. 인간의 뇌에는 노화가 진행됨에 따라 가장 먼저 기능이 떨어지는 특정 부위들, 즉 ‘노화 취약 허브(age-vulnerable hubs)’가 존재합니다. 창의적 활동은 바로 이 취약한 허브들의 연결성을 강화하여 구조적, 기능적 쇠퇴를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합니다. 창의적 활동에 숙련된 사람들의 뇌는 정보를 처리할 때 더 적은 에너지를 쓰면서도 더 빠르고 정확하게 반응합니다. 이는 뇌의 ‘생물물리학적 결합(biophysical coupling)’이 최적화되었음을 의미하며, 결과적으로 뇌가 과부하 걸리지 않고 젊은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습니다.
이번 연구 결과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단기간의 훈련을 받은 사람들에게서도 뇌 노화 지연 효과가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이는 지금이라도 새로운 취미를 시작하는 것이 뇌 건강에 유의미한 변화를 줄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음악을 듣기만 하는 것보다 악기를 배우고, 춤을 구경하기보다 직접 스텝을 밟을 필요가 있습니다. 뇌는 ‘입력’보다 ‘출력’을 할 때 더 강하게 자극받습니다. 익숙한 활동은 뇌를 편안하게 하지만 젊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복잡한 규칙이 있는 새로운 게임을 배우거나,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그림 그리기에 도전하는 ‘인지적 불편함’이 뇌를 젊게 합니다. 탱고나 합주와 같이 타인과 상호작용하는 활동은 사회적 뇌(social brain)를 자극해 우울감을 예방하고 인지 기능을 보존하는 효과를 냅니다. 전문적인 수준까지 도달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하루 30분이라도 뇌가 땀을 흘릴 수 있는 창의적 활동을 일과에 포함하는 게 중요합니다.
우주에 절대적인 시간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뇌의 시계도 절대적인 속도로 흐르지 않습니다.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The Curisous Case of Bejamin Button)>에서처럼 시계를 거꾸로 돌릴 수는 없어도 건강한 사람들의 뇌에서 시간은 천천히 흐릅니다. 우리가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고, 붓을 들고, 게임 전략을 고민하는 그 순간, 뇌의 시간은 느려집니다.
가장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뇌를 깨울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값비싼 건강기능식품을 찾는 것보다 내 머릿속의 ‘창의성’을 자극하는 게 더 중요합니다.
논문 링크: https://www.nature.com/articles/s41467-025-64173-9
임삼진 객원기자 isj2020@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