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대법원이 전교조 교사들의 정치적 시국선언을 유죄로 확정한 판결이 나오면서 대법원의 '보수 성향' 쏠림 현상이 뚜렷해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지난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09년 6월 이찬현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전지부장 등이 주도한 전교조 시국선언에 대해 공무원법 위반으로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번 판단은 공무원, 특히 교사들의 시국선언에 대한 유·무죄 판단의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의미가 있지만, 이들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해석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다수의견 "정치적 편향성·당파성 명확"
양승태 대법원장이 재판장으로 참석한 이번 판결에서 대법관들은 공무원법 위반 혐의의 핵심인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를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한 행위'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한 행위'의 해석을 두고 13명의 대법관은 넓게 해석하는 다수의견 8명과 이를 좁게 해석하는 5명으로 갈렸다. 유죄와 무죄의견도 같은 비율로 달라졌다.
다수의견은 이 부분에 대해 '공무원인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만한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할 정도에 이른 경우'라고 해석했다.
같은 맥락에서 다수의견은 당시 이 전 지부장 등 전교조의 시국선언 행위가 "반 현정권 전선의 구축이라는 뚜렷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정부의 정책 결정 및 집행을 저지하려는 의사를 집단적으로 행사함으로써 정부에 대한 반대 의사를 명확히 한 것으로, '공무 외의 일을 위한 집단행위'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또 "공무원인 교원의 정치적 중립성 및 이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침해할 만 한 직접적인 위험을 초래할 정도의 정치적 편향성 내지 당파성을 명확히 드러낸 행위"라고 유죄 이유를 설시했다.
그러나 소수의견을 낸 5명의 대법관은 “국가공무원법상 금지된 집단행위로 보려면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한 행위'를 "집단행위가 국민 전체와 공무원 집단 사이에 서로 이익이 충돌하는 경우 공무원 집단의 이익을 대변함으로써 공무수행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훼손하거나 민주적·직업적 공무원제도의 본질을 침해하는 때로 한정해야 한다"고 제한적으로 해석했다.
또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한 행위'라는 개념에는 국가공무원법상 금지한 내재적 제한이 있음을 고려해 '직무전념의무를 해태하는 등의 영향을 가져오는 집단적 행위'라는 요건이 별도로 충족될 것을 요구했다.
이어 "공무수행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훼손하거나 민주적·직업적 공무원제도의 본질을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도 없으므로, 피고인들의 시국선언이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한 행위가 아니다"고 판시했다.
어느 모로 보나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선언을 공무원법상 금지된 집단행위로서 볼 수 없어 무죄라는 취지다.
◇'진보 대법관'들의 빈자리
이번에 무죄 취지로 소수의견을 낸 대법관은 박일환, 전수안, 이인복, 이상훈, 박보영 대법관이다. 그러나 이들을 이른바 진보법관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들의 면면을 보면, 그동안 소수의견을 일관되게 내 오면서 이른바 진보성향의 대법관으로 알려진 인물들과는 다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역대 대법관 가운데 최근 대법관을 역임한 인물들 중에는 박시환, 김지형, 이홍훈, 김영란 대법관 정도가 이른바 ‘진보 대법관’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앞서 종교의 자유로 강제퇴학 처분된 강의석씨에 대한 판결이나 철도노조의 업무방해 판결 등 인권이나 종교의 자유 등과 관련해 진보성향의 소수 의견을 일관되게 내왔다.
그러나 법원행정처장을 역임한 박일환 대법관은 이번 판결에서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선언을 무죄로 봤지만 보수 또는 중도보수로 분류되고 있다.
역시 소수 의견을 낸 이상훈 대법관은 법원행정처 차장 출신으로 법리 적용면에서는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 대법관의 동생은 우리법연구회 창립회원인 이광범 전 서울행정법원 수석부장판사로 형의 대법관 추천 직전 사임했다.
김지형 대법관의 후임으로 임명된 박보영 대법관도 이번에 소수의견을 냈지만, 아직 진보나 보수 중 어느 쪽에 섰다고 평가하기는 이르다는 평가다.
◇소수의견 낸 전수안 대법관 7월 퇴임
박시환 대법관 등과 함께 진보 라인을 형성하면서 소수의견을 많이 낸 전수안 대법관이 이번에도 소수의견을 냈지만, 올 7월 퇴임을 앞두고 있다. 이 때문에 자칫 대법원 구성이 '보수 일색'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법원은 전 대법관을 비롯해 박일환, 안대희, 김능환 대법관의 만료에 따라 올 7월 새 대법관 네명을 맞게 된다.
보수 또는 중도보수로 분류되는 양승태 대법원장은 취임 당시 진보와 보수의 틀을 고려하기 보다는 사회 전반을 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대법관 구성을 약속했다.
올 7월 대법관 인사와 관련해 법조계는 물론 사회적인 이목이 어느 때보다 대법원에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