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순욱기자] 드디어 출마 선언을 했다.
지난 4.11 총선 승리 이후 당과 국회를 사실상 친박체제로 장악한 박근혜 의원이 1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서 대선을 5개월 남겨놓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앞으로 당내 경선이 남아 있지만 박 의원 앞에는 걸림돌이 없는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날 출정식은 사실상 본선 출정식을 방불케했다.
◇아버지 박정희의 '잘 살아 보세'를 업그레이드하다
출마선언문은 비장함이 가득했다. 아버지 박정희 이름은 한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하지만 선언문 전반에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가는 딸 박근혜가 가득했다.
선언문 서두에서 박 의원은 "우리나라가 가난을 이기고, 꿈을 이뤄가는 위대한 과정을 어린 시절부터 가슴깊이 새겨왔다"고 밝혔다.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가는 딸의 모습을 보기에 충분한 표현이다.
무엇보다도 이날 출마선언문의 큰 축은 박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50년전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박 의원은 이 계획이 1962년부터 현재까지의 50년을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박 의원은 "올해는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틀을 마련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시작한지 50주년 되는 해"라면서 "저는 국민행복을 위해 '경제민주화-일자리-복지'를 아우르는 '오천만 국민행복 플랜'을 수립하여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50년 전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산업화의 기적을 이뤄냈듯 '오천만 국민행복 플랜'을 통해, 앞으로 50년 이상 지속될 수 있는 국민행복의 초석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50년을 만들었다면, 박 의원 자신이 향후 50년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모든 메시지를 '먹고 사는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잘 살아 보세'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연상케하고 있다.
◇불운한 가족사, 전면에 등장하다
여기에 육영수 여사가 서거한 이후 '퍼스트레이디'로 살았던 자신의 불운한 삶이 덧붙여졌다.
박 의원은 "우리나라가 가난을 이기고, 꿈을 이뤄가는 위대한 과정을 어린 시절부터 가슴깊이 새겨왔다"며 "어머니가 흉탄에 돌아가신 후 견딜 수 없는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빈자리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 때문이었다"고 소회했다.
이어 "그때부터 제 삶은 완전히 다른 길을 가야했다"며 "개인의 삶 대신, 국민과 함께 하는 공적인 삶이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또 "각계각층의 국민들을 만나고 국민의 애환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저에게는 국민이 곧 어머니였고 가족이었다"고 말했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를 잃고 난 이후 공적인 삶을 살았던 자신의 애환을 술회한 것이다.
그런 박 의원도 1979년 10월 아버지 박 전 대통령이 서거한 이후 개인의 삶을 살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당시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신군부에 의해 유신시대를 이끌었던 김종필 등 구세력이 청산되던 시기였다.
그래서 박 의원은 "아버지를 잃는 또 다른 고통과 아픔을 겪고 저는 평범한 삶을 살고자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국민들의 땀과 눈물로 이룩해 온 나라가 IMF 외환위기를 맞아 무너지고 국민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고 지켜볼 수만 없었다"며 정치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배경을 설명했다.
핵심 키워드는 역시 '먹고 사는 문제'다.
"정치가 국민을 안심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안보까지 걱정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도대체 국민은 어디 있습니까? 국민의 삶은 어디 있습니까?"라는 격정적인 호소는 한국 정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다.
더 나아가 박 의원은 "그동안 정권이 여러 번 교체되었지만 국민들의 불안은 나아지지 않았다"며 "국가는 발전했고 경제는 성장했다는데 나의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나의 행복은 커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 대목에 이르러서는 박 전 대통령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치가 몽땅 부정당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출마선언문 전반에 박 의원 본인의 불운한 가족사가 흐른 반면, 그 과정에서 아버지 박 전 대통령에 의해 저질러졌던 인혁당의 사법살인, 정수장학회 강탈문제 등 타인의 삶을 파탄시킨 부분에 대해서는 고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국정운영의 기조를 '국가'에서 '국민'으로 오천만 국민행복 플랜으로 잡고 ▲함께하는 행복교육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투명하고 깨끗한 정부 ▲새로운 신뢰사회를 열어가겠다는 박 의원의 포부에는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그랬듯이 '위대한 영도자'가 되겠다는 포부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