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제주 올레길은 무죄다!

입력 : 2012-07-25 오전 10:45:23
[뉴스토마토 권순욱기자] 제주 올레길 1코스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고 있다.
 
치안문제가 그 핵심이다. '안전'이 화두가 되면서제주 올레길은 순식간에 '위험한 길'이 되고 있다. 마치 올레길이 범죄의 당사자가 된냥….
 
우근민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24일 "보다 안전한 올레길 탐방 여건을 조성해 제주올레 탐방이 거듭나는 계기로 삼겠다"며 "취약한 올레길에 대해서는 CCTV 설치 등 필요한 예산은 예비비를 써서라도 철저한 안전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제주도에서 벌어진 일이니 도지사로서는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이런 식이면 올레길에 온통 CCTV라도 달아놓을 셈인가? 그러면 지리산 둘레길은? 북한산, 관악산 둘레길은 어쩔 것이며, 이런 식의 논리라면 전국의 모든 산과 바다에 CCTV를 달아야 한다.
 
살인사건은 정말 종류도 다양하고, 그만큼 다양한 곳에서 일어난다. 길에서, 골목길에서, 술집에서, 산에서, 그리고 집안에서도 일어나는게 살인사건이다. 지금처럼 논의가 진행된다면 대한민국 모든 곳에 일정한 간격으로 CCTV를 달아놓아야만 안전하다고 우길 사람도 나올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 살인사건의 당사자는 인간이지, 자연과 공간에는 결코 죄가 없다.
 
지금 제주 올레길이 위험하다는 둥 난리를 치는 것은 인간의 죄를 자연에 떠넘기는 무책임하고 비겁한 처사다.
 
3년 전 가을, 베낭 하나 둘러메고 휴대폰도 없이 혼자서 올레길을 걸었다. 그 길에서 나는 이번에 숨진 40대 여성과 비슷한 나이 또래의 수많은 여성들을 보았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서 혼자서 혹은 둘이서 길을 나선 이들이다.
 
혼자서 걷는 길은 생각할 시간도 넉넉하게 주고, 아무 생각없이 머리를 쉬게 하는 시간도 넉넉하게 준다. 그리고 평소에 듣지 못했던 바람소리와 벌레소리도 듣고, 구름 흘러가는 모습도 보고, 바람에 몸을 흔드는 풀잎들과 그 풀잎들끼리 몸을 비비는 소리, 개 짖는 소리, 자박자박 들리는 내 발자욱 소리도 듣게 해준다.
 
그렇게 인간들은 자연 속에 안겨 도시에서 받은 상처를 치유(요즘 유행하는 힐링 Healing)을 하고, 인간으로부터 받은 아픔을 잊는다.
 
개인적으로 나는 제주 올레길 1코스를 아주 좋아한다. 그리 높지 않은 산길, 그리고 산길을 걷다가 만나는 그림 같은 초원은 육지에서 볼 수 없는 그런 매력과 여유를 준다.
 
시흥초등학교에서 출발해 처음 만나는 산길을 오르면 능선을 따라 성산 일출봉을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다.
 
땀 흘리며 올라온 산길은 평평하게 난 오솔길을 선물한다. 
 
탁 트여진 시야는 도시와 인간에게 찌든 우리를 치유해주기에 충분하다. 1코스 출발 지점인 시흥초등학교도 저 멀리 보인다.
 
능선을 내려오면 누구나 한번쯤을 걸어봤을 것 같은 고향길도 나타난다. 올레길은 특별한 길이 아니라 바로 마을과 마을 사이로 난 인간의 길, 삶의 길이다.
 
평지를 걷다가 목장 초원길을 만난다. 소나무 한 그루는 영화속 풍경처럼 서있고, 그 길을 지나 다시 야트막한 오르막을 오른다.
 
혼자 걸어도 좋고, 둘이 걸어도 좋은 길. 올레에서 만난 사람들은 주로 혼자이거나 둘이었다. 아버지와 딸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길을 걷고 있다.
 
그렇게 야트막한 산길을 걷다가 내려오면 종달리라는 작고 예쁜 마을을 만나고, 아스팔트로 된 해안도로를 따라 성산 일출봉까지 걷게 된다.
 
성산 일출봉을 가로질러 가면 광치기 해변을 만나다. 옛날에 고기잡이 배가 파도에 뒤집혀 사고가 나면 시신이 이 해변으로 밀려왔고, 그래서 시신을 수습하는 관을 늘 볼 수 있었다고 한다. 관치기가 광치기로 변했다고 한다. 여기서 1코스는 끝이 난다.
 
제주 올레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올레길을 마녀사냥하며 '안전'을 되네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이번 살인사건의 범인은 인간인가, 자연인가?
 
자연은 결코 무섭지 않다. 으슥하고 외지다는 것은 인간이 무섭기 때문이지, 자연 그대로의 공간이 무섭기 때문은 결코 아니다.
 
자연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간을 치유해주고 있다. 그런데 지금 인간에 의해 저질러진 살인사건을 자연에 덮어씌우고 있다.
 
올레길에 CCTV가 설치되는 상상은 그 자체로도 섬짓하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제주 올레길은 CCTV의 홍수가 될 것이 뻔하다. 전 코스를 합쳐서 족히 1000km는 넘는 길에 안전요원을 배치한다면 그 길은 더 이상 자연의 길은 아닐 것이다.
 
우거진 밀림 숲속 같은 곶자왈 길은 아예 폐쇄하자고 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곶자왈은 정말이지 남자인 나도 혼자 걷기엔 무섭기도 했다. 곶자왈 한 가운데로 들어가면 세상과는 완전히 차단된 느낌도 준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아무도 모를 정도로 으슥한 밀림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죽여서 어딘가에 파묻는다면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안전하다고 느낄 정도가 될려면 CCTV를 100대는 족히 설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아예 폐쇄하는게 낫다는 이야기다.
 
올레길을 걸으면서 만나는 수많은 풀어놓은 제주도 말도 모두 묶어둬야 할지도 모른다. 말 뒷굽에 차일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얼마나 위험한가? 실제로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말도 있다. 나도 한번은 말을 피해서 길을 돌아서 간 적이 있다. 마을 곳곳에서 만나는 개는 또 어떤가? 사납게 컹컹 짖어대는, 그것도 목줄을 묶어놓지 않은 개를 만나 조심조심 눈길 마주치지 않고 피해갔던 기억도 있다.
 
다시 묻고 싶다. 인간이 무서운가? 자연이 무서운가?
 
국가를 위해서라는 거창한 명분으로 아무렇지 않게 사람의 목숨을 빼앗았던 일은 수두룩하다. 거창 양민학살에서부터 제주 올레길 11코스에서 만나는 섯알오름에도 무고한 시민들을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집단학살한 현장이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라는 거짓된 혓놀림으로 수백명의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꿈뻑하지 않고, 멀쩡한 사람을 법치주의의 이름으로 사형장에서 목 매달아 죽이는 일에도 분노하지 않고, 이런 세상에 불안을 느끼지 않으면서, 인간을 치유해준 올레길을 불안한 곳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인가?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그럴싸한 입놀림에 놀아나고, 유신독재가 자행했던 수많은 살인과 인간의 삶을 파탄낸 일에 눈 하나 꿈적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 나는 훨씬 무섭고 두렵다.
 
제주 올레길은 무죄다!
 
죄는 바로 생명을 경시하는 인간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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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