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들 '오염된 전문감정' 지나치게 의존"

변호사들 "신청인 접근 잦아..병원은 아는 의사로 추천도"
"판사들 전문적 내용 잘 몰라..결과만 판결주문에 넣기도"

입력 : 2013-04-14 오전 9:00:00
 
[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재판 중 법원의 감정 의뢰와 결과에 대한 변호사들의 불신이 매우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14일 대법원이 발표한 '민사재판 리포트 2013(1심 집중 실천을 위한 제언)'에 따르면, 신진과 중진, 소형 법률사무소와 대형 법무법인 할 것 없이 감정인의 중립성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법원이 지나치게 감정인의 감정결과에 의존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대법원은 '1심 재판의 집중'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지난 해 5월과 6월 두 달에 걸쳐 사법연수원 25기 이상의 중진 변호사 그룹과 26기 이하의 신진그룹, 개인사무소를 포함한 소형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그룹, 대형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 그룹 등 변호사 집단 4개 그룹을 대상으로 집중 인터뷰 했다.
 
◇"토지감정인들 대형 건설사·LH공사 눈치 봐"
 
인터뷰에 참여한 한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는 "토지감정과 관련해 감정인들이 대형 건설사나 LH공사 등의 일감을 따내기 위해 눈치를 보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도 "판사가 감정서를 읽어봐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 감정결과에 이르게 된 과정은 생략한 채 결과만 가지고 판결 주문을 정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중진의 한 변호사는 "감정결과를 그대로 믿으면 안 된다"며 "밖에서는 감정에 관해 당사자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려고 한다. 감정을 비즈니스 영역으로 생각하며 상대방도 감정인에게 접촉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히 감정인과 접촉하려 한다"고 경고했다.
 
또 다른 중진 변호사도 "법원 외에 사건과 관련 있는 사람이라면 당사자나 대리인이 접촉하거나 접촉을 시도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종합병원만 하더라도 아는 의사들로 미리 세팅해버린다. 그렇게 안 하면 손해를 본다고 생각한다"며 "그런데 판사는 주문을 위해 감정에 결정적으로 의지하는 게 현실"이라고 우려했다.
 
신진 변호사들의 감정인들에 대한 불신 역시 매우 컸다.
 
한 신진 변호사는 "감정신청인이 재판부에 감정의 특수성을 주장하면서 특정협회를 통해 감정인을 추천해달라고 요청한 경우 재판부가 해당 협회에 공문을 보내면 감정 신청인이 그 협회에 로비를 벌여 자기측 사람이 감정인으로 선정되도록 하고 있다"며 "가장 많이 사용되는 수법"이라고 소개했다.
 
또 다른 신진 변호사는 "감정비용이 너무 비싸고 천차만별이어 문제"라며 "감정인 사이에 경쟁을 시켜 저비용을 유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재판부 스스로 전문성 강화해야"
 
대형로펌의 한 중진 변호사는 "감정인과 관련한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법원과 재판부 스스로 전문성을 강화하는 수밖에 없다"며 "재판부가 전문성을 가지고 감정인과 감정결과를 통제할 수 있다면 감정제도를 둘러싼 많은 문제점이 개선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 인터뷰에서는 변호사와 재판부와의 소통 문제인 '심증개시'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많이 나왔다.
 
심증개시는 재판부가 당사자에게 본인의 주장이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를 미리 알려줘 주장이나 입증 기회를 보호하는 행위를 말한다. 종국적인 판단을 돕고 당사자에 대한 '불의타(예상치 못한 불이익)'를 방지하는 역할을 한다. 법원으로서는 불복 가능성을 줄이는 효과도 있다.
 
한 신진 변호사는 "변호사로서는 법원이 우리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가 중요한데, 어떤 재판장은 '한번 얘기해보세요' 하고는 듣지도 않고, 바로 다른 얘기로 넘어가 버린다. 너무 형식적"이라고 지적했다.
 
중진의 한 변호사는 "입 꾹 다물고 있다가 결심하는 재판부가 매우 많고, 재판진행 스타일이 너무 가지각색"이라며 "사실인정은 침묵할 수도 있지만 법률적 평가는 개시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재판부-대리인 '소통' 없으면 실질적 변론 어려워"
 
또 다른 중진 변호사는 "재판부가 이해한 것을 먼저 얘기해 주고 당사자들에게 보충하거나 수정할 기회를 주는 형태로 진행하는 게 제일 바람직 한 것 같다"며 "소통과정에서 문제가 없어야 주장이나 집중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정해질 수 있는데, 그런 절차가 없으면 실질적인 변론이 전혀 이뤄질 수 없다"고 지적했다.
 
반대의 목소리도 없지 않다. 소형 법무법인 소속의 한 변호사는 "판사가 증인신문 전 까지 원고에게 유리한 것처럼 심증을 표명했다가 증인신문 후 심증이 바뀐 상태에서 결심하고 원고가 패소하면, 당사자의 의심은 해소할 길이 없다"며 "심증교류를 하지 않더라도 당사자와 대리인에게 충분한 기회를 주면 된다. 심증개시를 반대한다"고 말했다.
 
개인 사무실을 운영하는 한 변호사도 "판사의 언행은 그 취지와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실제로 당사자가 그렇게 오해하기도 하므로, 판사는 판결로만 얘기하는 것이 맞다. 판사가 말을 많이 하면 결국 불신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고 심증개시를 반대했다.
 
그러나 대부분 변호사들은 심증개시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 다만 방법과 정도의 차이가 문제라고 말했다.
 
한 중진 변호사는 "조서에 옮기든 안 옮기든 재판부가 '제기한 쟁점이 이게 맞느냐. 다른 쟁점은 없느냐' 정도까지만 얘기하고 진행하더라도 재판부가 어느 정도 사건파악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 많은 도움이 되지만 그 정도를 넘으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형 로펌에서 근무 중인 전직 판사 출신 변호사는 "법원에 있을 때에는 심증개시에 소극적이었는데 재야에 나와 보니 심증을 개시하는 게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며 "아예 안 하고 있다가 쟁점이 되지 않았던 부분이 판결에 영향을 미치면 그 황당함은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런 판결은 이긴 쪽도 불안할 것이고, 진 쪽은 무엇보다도 억울할 것이다. 결국 양쪽 모두에 사법부가 신뢰를 잃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석명' 수준 넘는 심증개시는 사법불신 초래 위험"
 
그는 그러면서도 "석명의 수준을 넘어서는 심증개시, 증명됐다는 식의 단정적인 심증개시는 위험하다"며 판사들의 신중한 태도를 요구했다.
 
재판부와 변호사, 즉 당사자들이 소통이 부족하다 보니 불신이 쌓이면서 준비서면의 양 증가 등 소송의 경제적 측면에도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중진의 한 변호사는 "판사들 입장에서는 길게 쓰지 않아도 다 알아듣는데 왜 이렇게 길세 쓰느냐고 할 수 있지만, 변호사 입장에서 볼 때 사건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판사들이 가끔 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준비서면이 길어지는 것은 당사자들이 판사를 못 믿기 때문이다. 실제 판결서를 받아보면 주장에 대한 판단이 빠지는 경우들이 있다"며 "판사가 간과하면 결과적으로는 변호사가 판사를 설득 못한 것이 되므로 미주알고주알 자세히 말하면서 준비서면이 길어지게 된다"고 밝혔다.
 
한 신진 변호사도 "대리인 측면에서 볼 때 제일 답답한 것은 재판부가 이 사건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를 모르겠다는 것"이라며 "어느 부분을 중요시하는지, 어느 부분에 관해서 증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종결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불안감 때문에 준비서면이 길어진다"고 말했다.
 
준비서면과 관련해서는 대형로펌의 대량 물량공세로 인한 소규모 사무소 변호사들의 고충도 나왔다.
 
◇"대형로펌, 준비서면 수백장 넘게 제출..물량공세"
 
개인 사무실을 운영 중인 한 변호사는 "대형로펌이 100쪽 이상의 준비서면을 제출하고 중구난방으로 얘기하면서 물량공세를 펼 경우 재판장이 쟁점정리를 하지 않으면 쟁점이 흐려지면서 의뢰인들이 전관을 많이 영입한 대형로펌이 반사적으로 승률을 가져간다고 생각하게 된다"고 토로했다.
 
이어 "100쪽, 200쪽 이상의 준비서면이 제출되는 경우, 중간에라도 쟁점을 정리하고 넘어가면 대형로펌이 전관을 동원했기 때문에 패소했다는 의구심은 떨쳐버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 변호사들은 최근 법원이 실시하고 있는 '조기 1회 변론기일'에 대해 회의적인 의견을 많이 냈다.
 
'조기 1회 변론기일'이란 '서면공방 선행방식'에 대비되는 심리방식이다. 가능한 한 조기에 제1회 변론기일을 지정해 법원과 양쪽 당사자가 쟁점을 정리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증거조사를 실시해 소송절차를 종결한다.
 
인터뷰에 참여한 중진의 한 변호사는 "변호사들은 대체적으로 조기 1회 변론기일 지정에 반대하는 것 같다"며 "조기 1회 변론기일 지정 때문에 하는 것 없이 변론기일만 속행되는 폐단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중진 변호사도 "조기 1회 변론기일 지정 제도는 실무가들이 생각하는 변론주의와 잘 안 맞는 것 같다"며 "민사소송법을 지키려다 보니 조기 1회 변론기일이 형식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인터뷰에 응한 한 신진 변호사 역시 "과거의 준비절차를 거쳐 쟁점을 정리한 후 변론기일을 진행하는 방식이 오히려 1심 충실에 기여했고 재판의 종결까지 걸리는 시간도 짧았다"며 "왜 그런 제도를 폐지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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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기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