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지난 대선 때 발생한 이른바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가 검찰로 넘어왔다.
검찰의 이번 사건 수사는 채동욱 검찰총장 취임 후 맡게 된 첫 대형 사건이다. 채 총장 뿐만 아니라 검찰 전체로서도 새 정부 시작 데뷔전인 셈이다.
경찰의 수사결과 발표가 있은 직후 채동욱 검찰총장은 "국정원 관련 의혹사건 일체는 국민적 관심이 지대한 사건인 만큼 한점 의혹이 없도록 신속하고 철저하게 수사하라"고 서울중앙지검에 지시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즉시 특별수사팀을 꾸렸다. 특별수사팀은 공안부 검사 3명, 첨단범죄수사부 검사 1명, 특수부 검사 1명 등 검사 6명을 비롯해 수사관 12명, 대검찰청 디지털포렌식 요원 등 수사지원인력 10여명으로 구성됐다.
수장은 이진한 서울중앙지검 2차장이 맡았다. 여기에 윤석열 여주지청장(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이 직무대리 형식으로 팀장을 맡고, 박형철 공공형사수사부장(전 대검 공안2과장)이 수사팀에 합류했다.
이 차장은 검찰의 대표적인 정통 공안 검사다. 대검 공안1과장, 대검 공안2과장, 서울중앙지검 공안1부장, 대검 공안기획관 등 검찰 내 공안 요직을 빠짐없이 거쳤다.
박 부장도 공안수사 경험이 많다. 대검 공안2과장으로 이 차장과 대검에서 오랫동안 합을 맞췄다.
두 사람은 임정혁 전 대검 공안부장(현 서울고검장) 휘하에서 제18대 대선과 4.11총선을 치러냈다.
특히 4.11 총선 당시 발생한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부정 경선 사건 수사를 지휘하며 당내 경선사건으로는 최대 규모인 462명을 사법처리했다. 검찰 공안 분야 베테랑이 동시에 수사팀에 합류한 것이다.
이번 사건의 최대 쟁점은 기소 송치된 국정원 직원 김모씨(28·여)와 이모씨(38), 일반인 이모씨(42) 등 3명에 대한 선거법 위반혐의다. 경찰은 정치개입 혐의는 인정되나 선거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없다며 공직선거법 위반혐의는 제외했다.
경찰은 국정원법 위반혐의로만 기소의견 송치하면서 “사건수사가 최종 마무리된 것은 아니지만, 6월19일 만료되는 공직선거법 공소시효 임박 및 사안의 중대성을 감안할 때 검찰에서도 최소한의 수사기간이 필요하다”고 이유를 댔다. 결과적으로 경찰로서는 선거법 위반에 대한 판단을 검찰에게 넘긴 셈이다.
그러나 이들 국정원 직원들의 당시 행위는 당연히 선거법 위반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유력한 해석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박주민 변호사는 “선거당시 정치에 관여한 것은 인정되는데 선거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은 이상한 논리”라며 “ 국정원 직원들이 문재인, 이정희 당시 후보들과 그들의 정책을 비판하지 않았느냐. 일반인들 뿐만 아니라 법조인들도 이해를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선거 시기에 정치적인 여론을 형성하려고 했다면 당연히 선거에 영향을 주려는 것으로 해석된다”며 “경찰로서는 현 정부에 부담이 될 것을 우려해 그런 식으로 법리구성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안사건에 정통한 검찰출신의 한 변호사도 “다른 기간도 아닌 선거기간에 정치에 개입한 것을 선거법 위반과 달리 본다는 것은 궁색한 논리”라며 “검찰에서 수사가 재개되면 뒤집힐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해석했다.
검찰의 수사가 집중될 두 번째 사안은 ‘국정원 댓글’사건의 배후 규명이다. 이번에 송치된 국정원 직원 김씨는 ‘댓글’작업을 북한사이버요원을 검거하기 위해 늘상 해오던 업무로, 정치적인 의도는 없다고 항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씨의 이같은 진술은 오히려 국정원 조직 전체를 수사에 끌고 들어온 셈이다. 국정원이 통상적인 업무를 통해 결과적으로 선거에 정치적 영향을 주게 된 것이므로, 국정원 차원의 조직적인 개입 의혹이 짙어진 것이다
박 변호사도 김씨의 진술에 대해 “댓글 행위가 국정원의 통상적인 업무이지 선거에 영향을 주려던 것이 아니라는 논리로, 이렇게 되면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는 논리를 구성할 수 있고 경찰 역시 이런 논리를 궁여지책으로 택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재 이른바 ‘원장님 지시말씀’ 등 조직적인 정치개입 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대상에 오른 원세훈 전 원장에 대한 수사확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수사진척도에 따라서는 원 전 원장 뒤의 배후까지 드러날 수 있는 사건이다.
원 전 원장은 서울시 행정1부시장 출신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른바 ‘서울시 라인’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행정공무원 출신으로, 이명박 정권의 초대 행정안전부 장관을 역임한 뒤 국정원장까지 등용됐다. 당시 원 전 원장의 임명을 두고 “전문성을 무시한 전형적인 코드인사”라는 비판이 비등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말 원 전 원장은 정치개입 뿐만이 아니라 각종 비리 의혹으로 추락했다. 검찰에는 정치개입 의혹과 관련해 원 전 원장을 고발한 사건이 10여건 가까이 계류 중이다.
이번 국정원사건의 검찰수사가 원 전 원장의 비리 내지는 전 정부 주요 인사까지 확대될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이미 국정원에서는 원 전 원장의 비리의혹 조사를 위한 TF까지 구성돼 조사 중이다.
검찰의 국정원사건 특별수사팀 구성에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참여하고 있음을 볼 때에도 이런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윤 지청장은 전형적인 특수통으로 대구지검 특수부장, 대검 중수2과장, 대검 중수1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 1부장 등을 거쳤다. 현대자동차 비자금 수사 및 LIG그룹 오너 횡령 사건 등 대형수사를 맡아 관련자들을 기소했다.
수사팀의 인적 구성으로 볼 때 채 총장 시대의 검찰이 그동안의 수많은 비판을 씻고 국정원의 조직적 개입과 그 배후까지 규명할 지 주목된다.
특히 정치권은 이미 이 사건에 대해 검찰수사 뒤 국정조사까지 예고하고 있어 자칫 경찰처럼 검찰도 부실수사 논란에 휩싸이게 되면 검찰로서는 채 총장 체제가 부여받은 개혁과 신뢰회복이라는 과제가 난파할 수도 있다.
경찰이 기소중지 의견으로 송치한 국정원 심리정보국장 민모씨와 원 전 원장에 대한 소환조사도 검찰의 손에 달렸다. 출국금지조치된 것으로 알려진 원 전 원장에 대해서는 혐의 입증을 위해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할 가능성이 벌써부터 제기된 상태다.
내외부의 거센 압박에 결국 실체를 드러내놓지 못하고 후퇴한 경찰에 비해 검찰이 어떠한 수사성과를 내놓을지 관심이 모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