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장래가 촉망됐던 30대 현직 검사가 '해결사'라는 낙인이 찍힌 채 22일 구속 기소됐다. 혐의는 공갈 및 변호사법 위반.
그는 지방 소도시 출신으로 서울의 명문외고와 명문대 법대를 나왔다. 그 어렵다는 사법시험을 그것도 대학 재학 중 합격했다.
그를 기억하는 법조인들은 심성이 참 좋았다고 말한다. 검찰 고위간부 중에는 그를 매우 아껴 중매하고 싶어하던 이도 있었다.
지방 여러 곳을 돌면서 검사로서 수사능력도 여러 차례 인정받았다. 곧 서울권 검찰청으로 입성하면서 엘리트 검사로 이름을 날릴 날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검찰 역사상 처음으로 '공갈' 혐의로 구속 기소된 춘천지검 전 모 검사(38) 이야기다.
그러던 그가 자신이 구속기소한 여성 피고인인 에이미(32·본명 이윤지)에게 연민을 품으면서 나락으로 추락했다. 김진태 검찰총장은 전 검사 때문에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창피하고 부끄럽다고 했다.
전 검사가 에이미를 처음 만난 때는 2009년 12월 9월이다. 에이미는 프로포폴 불법투여 혐의로 전 검사에게 수사를 받는 피의자였다.
두 사람 모두 첫눈에 들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 이전부터 서로 개인적으로 알던 사이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준호 대검찰청 감찰본부장(사진=최기철 기자)
◇수사 당시 전 검사 '에이미 저승사자'
오히려 수사 당시 전 검사는 에이미에게 저승사자 같은 존재였다. 현직 여자 연예인인 자신을 구속기소했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였으면 다시는 쳐다보기도 싫은 원수지간이 되고도 남을 악연이었다.
그러나 에이미가 2012년 11월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두 사람은 다시 만나게 된다.
구속기소되기 전인 그해 7월 에이미는 강남의 한 성형외과에서 성형수술을 받은 직후였는데 추가적으로 의료적 관리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구속수감 되는 바람에 수술 부위가 일부 괴사됐다.
에이미는 석방 직후 자기를 수술해 준 의사 최모씨(43·남)를 찾아가 재수술을 요구했다. 하지만 최씨는 거절했다. 수술은 말끔히 성공한 상태였고, 다만 구속 수감된 상태에서 추가치료를 받지 못한 것이 원인이었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그럴 의무가 없었다.
더 직접적인 이유는 프로포폴로 구속기소돼 유죄를 받은 연예인이 자신의 병원에 드나드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에이미는 전 검사에게 전화해 "최씨가 재성형수술을 해 주지 않는다"며 "수술을받을 수 있도록 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후 두 사람은 예기치 않게 가까워졌다. 에이미가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처음에는 전화만 주고 받다가 한달 뒤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하면서 연인관계로 발전했다.
여기가 주목되는 부분이다. 검사가 자신이 구속기소한 범죄자와 급속도로 연인관계로 발전하기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 검사 과거 피의자 자살 후 유서 남겨
이 배경에는 전 검사가 과거 수사한 또 다른 피의자와의 일화가 있다. 전 검사는 에이미를 수사하기 전 한 피의자를 수사했는데 수사가 종료된 뒤 그 피의자가 자살을 하면서 전 검사 앞으로 유서를 남겼다.
이 사실은 전날 에이미가 <JTBC>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털어놨다. 에이미는 나중에 전 검사로부터 들어 알게 됐다며 이때 전 검사가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검찰도 수사결과 이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그 피의자의 자살과 전 검사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었고 당시 피의자가 기존부터 앓고 있었던 우울증이 자살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 검사는 이 사건으로 감찰을 받거나 조사를 받은 사실이 없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전 검사는 피의자에 대한 연민의 감정이 필요 이상으로 감상적으로 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에이미의 경우도 자신이 구속기소하는 바람에 치료를 제때 못 받아 얼굴이 덧났다는 죄책감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이후 전 검사는 변했다. 에이미와 만난지 한달 뒤에는 최씨를 직접 찾아가 위협하기도 했다.
문자메시지를 통해서도 여덟 번에 걸쳐 "에이미를 재성형수술 해주지 않으면 병원을 압수수색하겠다" "저도 이제 원장님과 병원에 필요한 조치를 하겠다" "압수수색해 조사하면 안 나오는 것이 없다. 병원 박살낼 수 있다" "내 손 아니어도 당신 병원 박살내 버리고 당신 구속시킬테니까, 두고보자. 각오하라"고 협박했다.
전 검사의 협박에 못 이긴 최씨는 결국 700만원짜리 재성형수술을 무료로 해주고 에이미가 다른 병원에서 받은 치료비 2250만원까지 물어줬다. 전 검사는 이 돈을 자신이 받아 에이미가 지정하는 다른 사람 계좌로 송금해줬다.
◇'카드론'까지 얻어 에이미에 1억 줘
전 검사는 마이너스통장과 담보대출, 카드론까지 얻어 1억원에 가까운 돈을 에이미에게 보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전 검사는 전과 등으로 연예인 생활이 힘들어진 에이미가 앞으로 살아갈 수 있게 제과점이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 돈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외에도 전 검사는 에이미가 물건을 사거나 하면 대신 돈을 보내 값을 치렀다.
전 검사는 에이미 때문에 오히려 협박을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최씨의 여비서인 김모씨(37)가 최씨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고 전 검사와 에이미의 관계를 알아채고 이용한 것이다.
김씨는 전 검사에게 "에이미와의 사이를 폭로하겠다"며 협박해 3000만원을 뜯어냈다. 이후 프로포폴을 맞고 잠들어 있는 상태에서 성폭행당했다며 최씨를 고발한 상황에서 수사가 마음대로 진행되지 않자 전 검사가 최씨의 뒤를 봐주고 있다는 말을 경찰에 흘리기도 했다.
전 검사가 협박 당하고 돈까지 뜯긴 배경에 대해 검찰은 "전 검사가 에이미와의 관계가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렸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에이미도 전날 <JTBC>와의 인터뷰에서 전 검사가 김씨에게 당당하지 못한 상황에 있었느냐는 질문에 "아니다. 우선은 제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걸 걱정해서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전 검사와의 연인관계를 부인했던 에이미는 전 검사가 구속기소 되기 전날 연인관계임을 인정했다.
◇대검찰청 조형물 '정의·질서·평화'(사진=최기철 기자)
◇"사실 공개되면 에이미 너는 어쩌니?"
그는 "전 검사가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나에게 전화를 통해 마지막으로 한 말이 '너와의 관계가 공개되면 너는 어떻게 하느냐'는 거였다. 나를 걱정했다"고 했다.
이어 "나도 전 검사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말조심을 했다. 그러나 깨달은 것이 많아서 사실대로 인정하고 밝혔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 사건을 수사한 대검찰청 감찰본부(본부장 이준호)는 수사결과 발표에서 두 사람의 관계와 전 검사의 범죄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가급적 자제했다.
김훈 감찰1과장은 “감찰과 수사는 오로지 팩트(사실)에 충실히 기초했다”면서 “두 사람의 관계와 그로 인한 범죄의 인과관계에 대해서는 우리가 답하기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전 검사가 검사로서 에이미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