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에서 종북론만큼 활용도가 높은 국면전환 도구가 있다면 배후론쯤 될 것이다. 집단과 정치세력은 물론, 이념적 가치나 특정한 목적이 배후로 몰리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지난해 5월부터 세월호 특별법 협상을 둘러싼 유가족들의 면담 요구가 이어지자 이들의 순수성을 문제 삼았다.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논란(2013년 10월), 천주교 사제들의 시국미사(2013년 11월), 세월호 추모집회(2015년 5월) 때에도 배후론이 등장했다. 올 초 공무원연금 개혁 때에는 정부여당에 의해 ‘밥그릇’이 공무원들의 배후로 지목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1월 기자회견에서 “소통의 의미가 단순한 기계적인 만남이라든지, 또는 국민의 이익에 반하는 주장이라도 적당히 수용하거나 타협하는 것이냐, 그건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눈 밖에 난 집단은 타협의 여지도 없다. 정부에 대해 비판적 기조가 강한 집단들은 대개 주장의 내용과 상관없이 배후를 둔 불순한 집단으로 분류됐다.
최근에는 한국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불참으로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차질을 빚자 주무부처 장관이 노동계의 순수성을 문제 삼고 있다.
고용노동부 이기권 장관은 지난 3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노총이 반대하고 있는 것이 ‘노조의 동의 없는 취업규칙 변경’과 ‘쉬운 해고’라는 점을 전제로 노사정 대타협이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임금피크제 도입과 능력중심 인사관리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라면, 또는 다른 목적(배후)으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것이라면 협상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2주째 이어진 기자간담회를 비롯해 부쩍 늘어난 이 장관의 소통행보가 달갑지 않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 정부에 소통이란 상대방의 동의를 통해 정당성을 얻는 과정일 뿐이다. 정부의 요구를 거절하거나, 정부가 수용 불가능한 요구를 하는 집단은 불순세력으로 찍혀버린다.
현 국면에서 한국노총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대신 예상되는 상황은 두 가지 정도다. 정부가 또 다시 ‘배후론’을 비롯한 여론전으로 노동계를 압박하거나, 철도 개혁 때처럼 노동계를 힘으로 누르고 정책을 강행하거나. 정부의 관점에선 이게 소통이다.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