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사망한 남편이 남긴 상속재산을 남편의 형제자매들과 분할하기로 합의했더라도 미성년 자녀의 지분에 대해 특별대리인 선임 없이 합의한 것이라면, 이를 근거로 합의를 무효화시킬 수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박상옥 대법관)는 이모(57)씨가 “남편이 남긴 재산에 대한 근저당권설정 합의는 무효”라며 시누이 오모(71)씨를 상대로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6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미성년자인 자녀에 대한 특별대리인 선임 없이 친권자인 원고가 자녀의 법정대리인으로서 상속재산 지분에 대한 분할 합의를 한 것은 민법 921조에 위반돼 무효”라며 “지분권 분할 합의 이후 자녀의 특별대리인으로 사망한 남편의 남동생이 선임됐으나 그 역시 지분권 분할 합의의 당사자이기 때문에 그가 합의를 추인했더라도 적법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민법 921조는 미성년자인 자녀를 보호하기 위한 강행규정으로서 이에 위반된 결과를 그대로 실현시키는 것은 섣불리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원고가 자녀의 특별대리인이 선임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분권 분할 합의의 효력을 부정하는 것을 신의칙 위반으로 볼 수 없다"며 "같은 취지로 판단한 원심은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이씨의 남편은 1970년 박모씨와 결혼해 남매를 슬하에 뒀다가 박씨와 이혼한 뒤 1998년 이씨와 재혼해 그해 딸을 낳았다. 그러나 2010년 7월 암으로 사망했고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건물과 강남 개포동의 밭, 서초 방배동의 집합건물을 재산으로 남겼다.
이후 둘째 여동생인 오씨를 비롯한 이씨 남편의 형제자매들은 개포동 밭이 원래는 자신들의 아버지 소유이기 때문에 자신들에게도 지분이 있다면서 분할을 요구했고 이씨는 이에 합의하면서 법정대리인으로서 딸의 지분권 분할에 대해서도 함께 합의했다.
이후 이씨와 오씨 등은 합의에 따라 개포동 밭의 지분에 관해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치려고 했지만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받을 수 없자 2011년 1월 이씨를 채무자로, 오씨 형제자매를 근저당권자로 하면서 채권최고액 20억원의 근저당설정등기를 마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개포동 밭에 대한 향후 5년간의 임대료 수입 전액은 이씨가 갖고 오씨 등이 이 밭에 대한 상속세 4억을 부담하기로 하면서 오씨 등이 개포동 밭에 대한 사실상 처분권을 갖게됐다.
그러나 이후 이씨는 "개포동 밭은 원래 남편의 소유이며 딸에 대한 지분권 분할 합의가 민법 921가 규정한 특별대리인 없이 이뤄진 것으로서 무효"라며 오씨 등이 근저당을 설정한 개포동 밭 8분의 4 지분에 대한 근저당권설정등기를 말소하라고 소송을 냈다.
이에 오씨 등은 지분권 분할 합의 후 이씨의 미성년 자녀의 특별대리인으로 넷째 삼촌이 선임돼 합의를 추인했기 때문에 합의는 유효하다고 주장했으나 1, 2심은 "넷째 삼촌 역시 지분권 분할합의의 당사자였기 때문에 추인 역시 적법하다고 볼 수 없어 지분권 분할 합의와 그를 전제로 한 근저당권설정 합의 모두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에 오씨가 상고했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