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금융업, 최대이윤 아닌 '적정이윤' 목표로 해야"

이대순 약탈경제반대행동 공동대표

입력 : 2016-04-25 오전 6:00:00
[뉴스토마토 이혜진기자] 지난해 8월31일 시민단체 ‘약탈경제반대행동’이 출범했다. 약탈경제반대행동은 이대순 변호사 등 과거 투기자본감시센터 출신의 운동가들과 정승일 사민저널 편집위원장, 허영구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 이해관 KT새노조 대표가 의기투합해 만든 시민단체다. 

영문 단체명 ‘뱀파이어 캐피탈 헌터’(Vampire Capital hunter)에서 알 수 있듯 경제 시스템 전반과 금융 산업 곳곳에서 소리 없이 ‘피를 빠는’ 투기 자본, 먹튀 자본에 맞서는 시민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여의도 증권가에서도 약탈경제반대행동이 활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약탈경제반대행동은 지난 2월 미래에셋의 대우증권 차입 인수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고, 지난달 말에는 대형 증권사 중심의 과점 체제를 고착화하는 증권사 간 무료 수수료 경쟁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이렇게 치열한 싸움의 중심에서 약탈경제반대행동을 이끌고 있는 이대순 공동대표(법무법인 정률 변호사)를 만나 그동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시민단체 약탈경제반대행동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 앞에서 민주노총 산하 사무금융노조와 함께 증권사들의 무료 수수료 경쟁 중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지난 2003년 설립한 투기자본감시센터(이하 ‘투감’)에서 현재 약탈경제반대행동으로 단체가 재정립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다. 

 

투감 전 공동대표였던 장화식씨가 론스타에서 뒷돈을 받은 것 때문에 문제가 됐다. (지난 2011년 장화식씨는 론스타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 대가로 론스타 관계자로부터 8억원을 받았고, 올해 1월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바 있다. 외환카드 전 직원이었던 장씨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와 카드사 합병 과정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피해자이기도 하다.) 이 일 때문에 결국 투감 안에서 논쟁이 생겼는데, 우리는 황당할 뿐이었다. 그가 8억원을 받은 사실 자체를 알지 못했고, 그게 가능할 것이라고 상상도 못했던 거다. 미리 이런 일을 알았더라면 당연히 반대했겠지. 그런데 내용을 확인해봤더니 론스타에서 접근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장씨가) 먼저 달라고 했었다더라. 

 

-단체 존립에 치명타가 됐던 것 아니냐. 

 

그렇다. 시민단체에서 중요한 건 신뢰인데, 뒤에서 돈 받고 하면 어떤 시민단체가 신뢰를 받을 수 있겠나. 그래서 투감 안에서 논쟁이 시작됐다. 지금 상태에서는 우리가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해산하든지, 처절히 용서를 구하고 다시 시작하든지 둘 중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그런 과정에서 ‘우리가 해왔던 금융, 경제 관련 시민운동이 이대로 없어지는 게 맞느냐, 장씨 한 명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일 뿐이지 않나, 새로 시작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사실 장화식 사태 이전부터 ‘투감 10년이면 한 번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여태까지 해왔던 경험을 토대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단체 명칭도 변경하고 사업 영역을 심화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몇 개월간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정체성이 어떻게 더 확대된 건가. 

 

이제는 단순히 투기자본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문제, 더 정확히는 신자유주의의 문제가 심각하다는 데 의견이 모아졌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리의 정확한 입장을 이야기해주고, 앞으로의 비전도 제시하자는 목표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우리 단체의 명칭을 갖고도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알바 노조를 비롯한 젊은 친구들이 이런 얘기를 하더라. 자기들은 그냥 피를 빨리는 것 같다고. 그러면서 뱀파이어를 자꾸 언급하더라. 그래서 우리 단체 영문명이 뱀파이어 캐피탈 헌터가 된 거다. 

 

-그렇게 약탈경제반대행동이 출범한 지 8개월이 됐다. 그동안 어떤 일들을 해왔나. 

 

우리는 기본적으로 금융감독체제가 지나치게 해체되는 흐름에 반대하고 있다. 소위 투자은행(IB), 거대 금융자본에 대한 환상이라고 불리는 것들이다. 미국처럼 몸집을 키워야 경쟁이 가능하다, 그래야 돈을 벌 수 있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아주 단순한 논리가 지배적이다. 

 

그런데 그건 지난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 이미 깨졌다. 미국에서조차 인베스트먼트 뱅크(IB)와 커머셜 뱅크(CB·고객 예금 중심)를 분리해야 한다는 방침이 법제화됐고, 전 세계적으로 금융감독이 강화되는 추세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만 단순 합병을 통해 몸집을 불릴 수 있겠나. 

 

그래서 미래에셋의 대우증권 차입인수를 반대해왔다. 자기 돈을 갖고 인수한 게 아니지 않나. 8000억원 정도가 차입 자본인데, 그게 미래에셋의 채무로 돼있다. 합병하면 순자본 8000억원이 없어지는 구조다. 금융 산업이 가질 수 있는 ‘기계’가 자기자본인데, 그래서 우리가 적정 자기자본비율(BIS)을 자꾸 언급하는 거다. 그런데 8000억원이 사라진다는 건 말 그대로 공장을 팔아먹는 거랑 똑같은 얘기다. 도대체 왜 메가뱅크로 가는 지 이해를 못하겠다. 

 

-최근 IDS홀딩스의 유사수신 행위를 막기 위한 활동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IDS홀딩스 사건은 전형적인 폰지 사기(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이자를 지급하는 다단계 사기 수법)다. 홍콩 환율 상품에 투자한다며 한국에서 투자자를 모아 12% 이자와 1년 후 원금 지급을 보장해준다는 말로 유혹했다. 지금 같은 구조에서 절대 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정말 걱정이 많이 된다. 우리나라는 앞으로도 계속 저금리 기조로 가게 되는데, 그러면 은퇴한 연금 생활자부터 고금리 상품을 쫓아가게 돼있다. 그러면 사기꾼들에게 좋은 토양이 만들어지는 거지. 

 

더 우려스러운 건, 피해자들이 고소득층에서 중산층, 그 밑 하위층으로 계속 피해 계층이 내려오고 있다는 거다. 특히 연금 생활자들은 연금 갖고는 부족하니까 이자 수익이 필요한데, 금리는 낮으니 자꾸 고금리 상품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거다. 그리고 이런 위험한 상품들이 쉽게 접근 가능한 은행 창구에서 팔거든.

 

우리의 목표는 ‘최대 이윤이 아닌, 적정 이윤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자리잡도록 하는 것이다. 최대 이윤을 추구하다보면 결국 사기로 간다. 적정 이윤을 목표로 해야 제대로 된 금융상품도 만들어진다. 돈의 논리라는 것이 뻔하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고위험 고수익)이기 때문에 최대 이윤을 추구하는 건 금융 산업에선 금기시돼야 한다. 불행하게도 IB 자체가 그런 속성이 있는데 무조건 좋은 건줄 알고 따라가는 게 문제다. 이러한 저금리 시대에는 이런 것들이 서민들 피해로 전가된다. 

 

-오랫동안 변호사와 시민단체 대표 일을 병행해왔는데, 특별한 사명감 없이는 힘든 일일 것 같다. 

 

그만큼 세상을 본 죄다. 가끔 스스로에게 질문을 할 때가 있다. 왜 여기까지 왔을까. 나는 사실 법무법인 광장에서 지난 97년까지 근무했다. 제도권에서 열심히 돈을 벌었던 기업 변호사였는데 어느 순간 여기까지 왔다. 그 전에는 열심히 돈 벌다가 남는 시간에 재능기부하는 정도였지만, 투감 대표를 하면서 론스타, 쌍용차, 위니아 만도 사태 등 본격적으로 많은 경험을 하게 된 거다. 아마 대기업 쪽 변호사로 일하다 서서히 시민단체로 온 변호사는 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일련의 경험을 통해 받은 충격들이 우리 사회에 대한 고민을 치밀하게 하는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이대순 약탈경제반대행동 공동대표. 사진/뉴스토마토

 

이혜진 기자 yihj072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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