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공익재단법…총수일가 지배력 수단 언제까지

삼성·금호, 논란 자처…30대그룹 공익재단, 설립목적에 수입 절반도 안써

입력 : 2017-07-05 오후 3:48:34
 
[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 법안이 장기 표류 중이다. 그 사이 공익법인이 설립목적과 달리 총수일가의 지배력 유지에 악용되고 있다는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3·4세 승계 시기와 맞물려 상속세 부담이 늘어나면서 논란의 불씨도 커지는 양상이다.
 
삼성의 명운을 가를 이재용 부회장 재판이 5일 36차 공판을 맞았다. 전날에 이어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 대한 증인 신문이 이뤄졌다. 3월9일 공판준비기일부터 4개월째 특검과 삼성간 법리다툼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핵심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간 합병이 경영권 승계 목적이었는지, 그리고 최순실 모녀에 대한 승마 지원 등이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이끌어내는 대가성이었는지 여부다.
 
합병 직후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삼성물산 지분을 인수해 편법 승계 논란을 키웠다. 합병으로 발생한 신규 순환출자를 해소하기 위해 삼성SDI는 삼성물산 보유지분 500만주 중 일부를 이 부회장과 삼성생명공익재단에 매각했다. 삼성은 대규모 주식매각에 따른 시장 부담을 최소화하는 차원으로 설명했으나, 재단 자금이 동원된 것에 대한 비판여론이 적지 않았다. 합병에 앞서 이 부회장이 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것부터 승계를 위한 일련의 과정으로 해석됐다. 당초 재단 자금도 삼성생명 차명주식이 원천으로 의심돼 사회적 정당성을 얻기 어렵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삼성은 앞서 고 이병철 회장이 삼성문화재단, 삼성공제회 등을 거쳐 이건희 회장에게 주식을 이전한 사례가 있다.
 
공익법인은 공익목적사업을 수행하는 법인으로 각종 조세감면 혜택을 받는다. 이를 악용해 1970년대부터 재벌의 지배주주가 후세에 증여세 없이 계열사 지분을 물려주는 사례가 빈번했다. 이에 1990년 공익법인의 계열회사 지분이 20%를 초과하면 상속·증여세를 과세했고, 1993년 20% 한도를 5%까지 강화했다. 1996년에는 5%를 초과하는 지분을 처분하도록 법을 개정했다. 그러다 2007년 비과세 한도가 성실공익법인의 경우 10%까지 완화됐다.
 
비과세 한도가 존재하는 만큼 공익법인 보유주식에 대한 논란은 끊이질 않는다. 금호아시아나그룹 역시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2015년 9월24일 박삼구 회장은 우선매수청구권을 활용, 채권단으로부터 금호산업을 7228억원에 매수하는 계약을 체결했고 그해 12월29일 인수대금을 완납했다. 같은 해 10월 초 금호산업 인수 목적으로 금호기업을 설립했으며, 자본금 출자에 금호재단과 죽호학원이 동원됐다. 박 회장의 인수자금으로 공익법인 자산이 사용돼 본래 목적에 맞지 않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공익법인이 경영권 프리미엄을 지불하면서까지 주식을 인수한 것은 배임 문제로 불거졌다.
 
이 같은 전례에 비춰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은 지분 승계에 악용될 것이란 의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총수 지분에 대한 후계자의 상속세 부담이 크고, 지배구조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면서 비과세 한도의 여유가 있는 공익법인이 대표적이다. 주로 현대차(현대차정몽구재단), 현대(임당장학문화재단), 현대중공업(아산사회복지재단), GS(동행복지재단), 효성(동양학원) 등이 거론된다. GS의 경우 지난해 11월 허동수 GS칼텍스 회장과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 허완구 승산 회장이 GS 보유주식 145만주를 동행복지재단에 증여, 재단의 GS 지분이 기존 0.06%에서 1.62%(보통주)까지 올라갔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익법인이 악용되는 사례를 막기 위해 계열사 보유주식에 대한 의결권 제한 법안을 지난해 발의했으나 장기간 계류돼 있다. 법안은 공익법인이 지주사 또는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핵심 계열사의 주식을 우선적으로 보유해 대기업집단의 지배구조에 있어 중요한 연결고리에 위치하고 있다는 점을 꼬집었다. 당초 설립목적과 달리 총수일가의 지배력 유지 차원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자유한국당 등은 법인의 지분율이 높지 않고 공익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등의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공익재단의 지난해 목적사업비 지출이 총 수입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CEO스코어는 이날 30대그룹 중 공익재단에 출연한 26개 그룹 46개 공익재단의 지난해 목적사업비 지출 현황을 분석한 결과, 총수입 6800억원 중 47.1%인 3202억원만 목적사업에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삼성의 경우, 삼성문화재단(13.66%)이 GS의 남촌재단(12.98%)에 이어 목적사업비 지출 비중이 낮은 명단에 오른 반면, 삼성복지재단(95.41%)과 호암재단(99.56%)은 상위 5위권에 들었다. KT의 KT그룹희망나눔재단(20.1%), 포스코의 포항산업과학연구원(21.8%), 한진의 정석물류학술재단(23.5%), GS의 GS칼텍스재단(24.0%) 등도 목적사업비 지출 비중이 극히 낮았다. 롯데장학재단(31.9%), 두산연강재단(34.9%), 아산나눔재단(36.3%), 농협재단(38.3%), 롯데삼동복지재단(46.6%)도 50%를 넘지 않았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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