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칼럼)자폐증과 감각처리장애(3) - 자폐아동의 시각적 처리 이상상태

(의학전문기자단)김문주 아이토마토한의원 대표원장

입력 : 2017-12-21 오전 6:00:00
자폐스펙트럼장애 아동 중에는 속칭 ‘멍 때림’이라는 특이 증세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아이가 표정 없이 멍한 상태로 초점을 어디로 향하는지 모르게 허공을 주시하며 두리번거리기도 한다. 필자의 경험상 허공을 보는 멍 때림의 대부분은 자폐증 아동들이 겪는 ‘시각적 처리능력의 특이성’ 때문에 발생한다.
 
한 번도 런던을 방문해 본 적이 없는 자폐스펙트럼장애인 화가가 세밀화로 런던 골목까지 그려내서 유명해진 사건이 있다. 30분여 헬기를 타고 런던 상공을 비행하고는 그때의 시각적인 기억으로써 런던의 골목까지 세밀화로 복원해낸 것이다. 이 화가는 런던에 직접 가보지 않고 단지 30분 상공에서 관찰했을 뿐이다. 이때 화가는 바보스럽게 멍 때리는 시선으로 헬기 밖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인간의 시각을 구성하는 첫 번째 감각기관은 눈동자다. 눈과 시각세포는 카메라와 같아서 사물을 골라서 인식하거나 조작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카메라로 찍은 광경은 존재하는 사물 모두가 화면으로 투과되어 나타난다. 우리의 뇌는 그중 필요한 정보를 증폭하여 주의집중을 강화한다. 대체로 사람에 대한 정보가 증폭되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머지 정보는 약화 처리하여 주변 정보화시킨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특정 사건이 있을 때 주로 사람을 기억해내는 것이다.
 
그러나 자폐스펙트럼장애인의 상당수는 시각적인 정보의 강화 처리나 주변화 처리를 하지 못한다. 눈이 카메라가 되어서 찍은 사진 같은 정보를 뇌간에서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채 대뇌로 전달한다. 이렇게 보인 세상은 사물이 100개면 100개가 한꺼번에 눈 속으로 쏟아져 들어와 대뇌로 전달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기에 사물에 대한 정보가 세밀한 부분까지 한꺼번에 시각정보로 기억되다. 런던 상공을 잠시 보고 그것을 속속들이 그려내는 일은 이런 시각적 처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가능하다. 문제는 이때 발생한다. 이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정보는 단지 사물 하나와 같은 비중으로 처리된다. 100개의 사물 중 하나로서 사람이 인식되기 때문에 사람에게 특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시각적인 인식 과정의 특징으로 인해 자폐스펙트럼장애인의 사물 인식력은 높아지지만 사람에 대한 안면인식력은 점차로 약화되어 소멸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자폐증 환자가 눈맞춤을 못하는 이유도 이런 메커니즘 때문이다. 시각적으로 너무 많은 정보가 한꺼번에 들어오기에 눈을 맞추고 사람에게만 집중하기란 불가능하다. 아주 심한 자폐증의 경우는 거울을 보고 자기 자신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필자가 아는 아스퍼거증후군 아동들은 친구들의 얼굴을 세밀한 모습으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윤곽으로만 기억한다.
 
눈에 고장이 난 것이 아니다. 대뇌가 고장 나서 사람 인식과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감각처리 과정의 오류로 인하여 사람의 정보가 사물 정보로 처리되기 때문이다. 자폐 아동이 허공을 보며 멍 때리고 있다면 이는 허공을 응시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 구체적인 물체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해야 자폐 아동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있다.
 
※ 위 칼럼은 필자의 저서 《자폐, 이겨낼 수 있어》의 내용 일부를 수정 편집한 것임.
 
 
◇ 김문주 아이토마토한의원 대표원장
 
- 연세대학교 생명공학 졸업
- 가천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 (현)한의학 발전을 위한 열린포럼 운영위원
- (현)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
- (현)토마토아동발달연구소 자문의
- (전)한의사협회 보험약무이사
- (전)한의사협회 보험위원
- (전)자연인 한의원 대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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