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한 생명보험사의 전속설계사 최모씨(36·남)는 최근 대학 후배에게 “보험료를 대신 내줄 테니 보험에 가입해달라”고 부탁했다. 3개월만 유지하면 되고 이후에는 실효(효력상실) 상태로 두다가 해지하면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다른 생보사 소속 이모씨(34·남)도 자신이 6개월간 보험료를 대납하고 6개월은 가입자가 보험료를 납부하는 조건으로 친구에게 보험을 가입시켰다. 1년 이상 유지하면 해지환급금이 6개월치 보험료를 초과해 금전적으로 이익이라고 설득했다.
19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최씨나 이씨처럼 보험설계사가 보험료 대납을 조건으로 보험을 판매하거나 자기 자신에게 보험을 판매하는 관행이 횡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설계사들은 지점 단위로 설계사 1인당 판매 할당량을 정하거나, 보험사 또는 법인보험대리점(GA)이 실적 구간별 판매수당을 차등 적용해 제 살 깎기식 자가판매가 불가피하다고 토로하고 있다. 매년 한두 차례 가족들 명의로 보험을 드는 박모씨(32·남)는 “계약 한두 건 차이로 줄어드는 월급보다 보험료를 매달 대납하는 비용이 더 들 때도 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당장 월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생활 자체가 어렵다”며 “영업실적이 저조한 설계사들을 보면 그나마 계약한 건에 대한 수당이라도 제대로 받기 위해 불이익을 감수하고 말일에 보험을 계약해 달이 바뀌자마자 철회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수당을 목적으로 하거나 보험사의 압박에 의한 보험 자가판매는 보통 계약 유지기간이 1년 이내로 짧기 때문에 계약 유지율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실제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생·손보업계의 13회차 계약 유지율은 지난해 3분기 기준으로 각각 78.5%, 82.6%에 머물고 있다. 생보업계의 유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전속 채널 의존도가 높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기에 자가판매는 계약 유지기간이 짧은 만큼 해지환급금이 적어 보험사의 수입보험료에 거품을 조장하고 수익구조를 왜곡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설계사는 “전체 수입보험료의 10분의 1 정도는 자가판매에 따른 수입이 아닐까 본다”며 “자가판매는 사업비를 제외하면 영업지출이 거의 없는 수입이기 때문에, 이 부분만 덜어내도 보험사의 수익구조가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업계의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보험설계사가 보험료 대납을 조건으로 보험을 판매하거나 자기 자신에게 보험을 판매하는 관행이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은 한 고객이 보험 계약서에 서명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jiyeong850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