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 금융부 기자
이달부터 삼성화재를 비롯한 7개 손해보험사가 유병력자 실손의료보험 판매를 시작했다. 이달 중 농협손해보험이, 상반기 중에는 삼성·농협생명도 유병자 실손보험을 출시할 예정이다.
유병자 실손보험 출시는 과거 병력과 투약 이력을 이유로 그동안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못 했던 유병력자들에게 희소식이다. 소액 진료와 약제(처방조제) 비용이 보장되지 않고 일반 실손보험과 비교해 보험료가 높지만, 월 3만~5만원대 보험료도 입원·수술 비용을 보장받을 수 있다.
반대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유병자 실손보험의 상품 구조와 보험료 등은 손해율이 130%를 웃도는 일반 실손보험을 기초로 설계됐다. 보장이 제한적이고 보험료가 높다고는 하나 실제 손해율이 어느 수준일지는 예측이 어렵다.
끼워팔기가 금지된 건 보험사 입장에서 악재다. 그동안 실손보험은 다른 보험상품 판매를 위한 미끼상품으로 취급된 면이 있었다. 설계사들은 실손보험에 종합건강보험이나 종신보험을 끼워팔면서 수수료를 챙겼고, 보험사는 실손보험에서 발생한 손실을 다른 상품에서 얻은 이익으로 보전했다. 앞으론 유병자 실손보험을 비롯한 모든 실손보험이 단독상품으로 분리돼, 보험사들은 안 그래도 자발적 가입률이 낮은 종신보험 등을 팔기가 더 어려워졌다.
무엇보다 유병자 실손보험이 현장에서 원활히 정착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유병자 실손보험의 주력 판매채널은 대면채널이다. 보험사와 설계사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그런데 아직까진 동기가 없다. 보험사는 손해가 예상되는 상품을 굳이 적극적으로 팔아야 할 이유가 없고, 설계사는 보다 수수료율이 높은 상품을 판매하는 데 시간을 투자하는 게 효율적이다.
기껏 출시된 상품이 기피 상품으로 전락해버리면 그 피해는 소비자들에게 넘어간다. 섣부른 예측이겠지만, 유병자 실손보험 활성화를 위한 별도의 유인책이 없다면 실손보험에 가입하기 위해 소비자가 먼저 고액 보험을 미끼로 제시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유병자 실손보험 출시는 실손보장 사각지대 해소가 목적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금융당국은 불완전판매 등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 사례와 끼워팔기 여부를 모니터링한다는 계획이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보험사와 설계사들이 스스로 유병자 실손보험 판매를 확대할 수 있도록 동기를 줘야 한다. 또 악의적인 판매 거부에 대해선 적당한 수준의 제재도 필요하다.
김지영 금융부 기자 jiyeong8506@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