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부동산정책…“공급확대는 8.31 데자뷔”

전 정부들 공급확대로 집값 잡기 실패…전문가들 “덧대는 공급책 역효과”
8.31정책 때 공급계획엔 부동산가격 활황, 양도세 시행 후 둔화

입력 : 2018-09-09 오전 7:02:47
[뉴스토마토 이재영 기자] 대규모 공급확대정책을 추진했던 역대 정부들은 모두 집값 잡기에 실패했다. 기존 17만호에 8.27 대책으로 30만호를 추가한 정부가 또다시 추가 공급을 준비하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전문가들 의견을 종합하면, 규제로 가수요를 억제하면서 실수요자를 위한 공급책도 필요하다는 데는 큰 이견이 없다. 다만 현재 수도권이 실제 실수요자에 대한 공급이 부족한 상황인지는 논란이 많아 공급정책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중론은 시장에 공급확대 신호를 보내 단기적으로 집값을 잡으려는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난 정부들의 부동산 정책을 보면, 전두환정부에서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으로 115만5000호 주택 공급을 추진해 집값 잡기에 나섰으나 실패했다. 1988년 강력한 투기억제책으로 3개월가량 집값이 하락하기도 했으나 이후 다시 상승세로 돌아서 단기효과에 그쳤다. 노태우정부에서도 주택가격이 상승해 억제책을 여러 차례 실시했으나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 정부 역시 1988년부터 5년간 200만호를 건설하는 계획을 수립했었다. 하지만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고 상습투기에 봉급생활자까지 투기가 빈번해 1990년 4월13일 각종 투기억제대책을 내놓아야 했다. 이후에는 불황으로 부동산정책이 경기활성화에 맞춰졌다. 그러다 참여정부 시절 다시 10년동안 임대주택 150만 가구건설 목표를 세웠다. 참여정부는 수시로 투기억제책도 펼쳤지만 2003년부터 서울 집값은 폭등했다. 2005년 8.31 대책을 통해 세제부터 공급확대까지 광범위한 추가 대책을 내놨지만 집값은 잡지 못했다. 그런데 가격 추이를 보면, 시장은 공급확대에 활황을 보이다가 양도세 중과 유예기간을 지나 전면 시행된 2007년부터 집값 상승이 완만해졌다. 당시 서울 아파트매매가격 지수는 2006년 초부터 연말까지 14.9점이나 올랐다가 2007년에는 3.8점 오르는데 그쳤다. 공급은 집값에 불을 지폈지만 세제는 효과를 발휘했다고 해석 가능한 부분이다.
 
 
 
현재도 추가적인 공급확대는 가수요만 끌어당길 것이란 관측을 여러 지표가 뒷받침한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부동산 시장 버블 판단지표인 소득대비 주택가격 비율(PIR)은 전국적으로는 안정적이지만 서울에 한해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해 3분기 기준 LA, 런던, 뉴욕, 도쿄, 싱가포르보다 서울이 상당히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2주택 이상 다주택자가 추가로 주택을 구매하는 비중도 지난해까지 급증해 투기목적 수요가 주택시장에 상당히 유입된 것으로 보여진다. 해당 지표는 2015년 7.5%에서 2016~2017년에는 14%로 2배가량 증가했다. 현 정부가 이를 억제하기 위해 전 정부에서 풀었던 각종 규제를 복원시켰으나 강남3구 등 일부 지역에는 다주택자 규제에 따른 똘똘한 아파트 한 채 매입 수요 등이 작용해 매수세가 강화됐다. 그간 정부는 다주택자만 가수요로 봤으나 똘똘한 한 채 선호 경향으로 1가구 1주택자 중에도 가수요를 배제하기 어렵게 됐다.
 
물론 전문가들 사이엔 1인 가구 등 가구 수 증가로 주택 공급이 수요를 따라주지 못한다는 시각도 많다. 이들은 현재 수요 요인이 주택가격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는 견해다. 하지만 실수요자가 어느정도인지 정확한 파악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강남지역에 입주하려는 수요는 전국적인 수요이기 때문에 이들을 모두 수용키는 어렵다는 관점에서다. 이들은 인구변화에 따라 공급이 확대될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집값 대책 차원으로 덧대는 식의 공급정책은 시장 불안만 키운다고 경고했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는 “정부가 실기한 측면이 있다. 수요를 억제하면서 가격을 잡는 듯 보였을 때 공급 대책이 나왔어야 한다”며 공급 대책은 필요하지만 개발호재로 집값이 오르는 것은 피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내다봤다.
 
권일 부동산인포 팀장은 “시중 통화량이 많으면 통화가치가 떨어지듯 매물이 많으면 가격도 떨어질 수 있다”면서 “다만 어느정도 물량이 풀려야 떨어질 것인지, 서울 대기 수요를 예측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대출이 아니라도 현금을 쥐고 있는 자산가들이 많다”며 “그들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공급이 풀릴 수 있느냐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성달 경실련 부동산 국책감시팀장은 “가격 상승의 근본 원인은 공급부족이 아니라 비싼 매물이 시장에 나오기 때문”이라며 “시장에 새로 나오는 집이 비싸면 주변 집값을 다시 자극해 가격이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이어 “원가 공개가 투명하지 않아 분양가를 부풀려 신고하거나 소비자에게 제시해도 검증 못한다”며 “그 가운데 정부가 내놓겠다는 공공임대 주택은 실질적으론 단기 임대 후 분양전환되는 분양주택으로 주변 집값만 자극한다. 서민들이 기다리는 영구임대주택을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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