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공동취재단, 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방북 마지막 날인 20일 이른 아침부터 일정을 서둘렀다. 귀환 전 그토록 염원하던 백두산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평양시민들과 인사를 마친 문 대통령이 탑승한 공군 2호기는 오전 7시 27분경 평양공항을 떠났다.
백두산이 위치한 삼지연공항까진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멀게만 느껴졌던 곳은 이렇게 가까웠다. 문 대통령이 탑승한 공군 2호기가 활주로에 들어서자 군악대 연주와 함께 공항에 마중 나온 주민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오전 8시22분 비행기 문이 열리고 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 대통령 내외는 탑승교로 내려가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김 위원장 내외와 악수했다. 화동들이 걸어오자 문 대통령은 무릎을 굽혀 꽃을 받았다. 이내 김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이 꽃을 받아들었다. 문 대통령 내외는 일렬로 선 김영철 당 부위원장, 노광철 인민무력상, 리선권 조평통 위원장 등 북측 인사들과 차례로 악수했다.
문 대통령과 김 여사가 레드카펫 위를 걷기 시작하자 주민들은 더 크게 환호했다. “조국” “통일” 주민들의 외침에 문 대통령 내외는 손을 흔들어 보이며 미소로 답했다. 잠깐의 인사 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내외가 각각 검정색 차량에 탑승하면서 10여분 남짓한 삼지연 도착 행사가 마무리됐다. 차량은 곧장 백두산 정상 장군봉으로 향했다.
“그 만병초가 우리 집 마당에도 있습니다.”
문 대통령과 김 여사, 김 위원장과 리 여사는 오전 9시33분 장군봉에 도착했다. 파란 물이 가득 담긴 천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김 위원장은 백두산 천지를 처음 방문한 문 대통령 내외에게 이 쪽 저 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백두산에는 사계절이 다 있습니다”라고 소개했다. 리 여사가 “7~8월이 제일 좋습니다. 만병초가 만발합니다” 하고 거들었다. 그러자 문 대통령은 "그 만병초가 우리 집 마당에도 있습니다"라고 말하며 반가워했다.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떨어져 살았다’던 지난 밤 평양 시민에게 건넨 문 대통령의 말처럼 백두산과 남녘에 있는 집 마당이 퍽 가깝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문 대통령 내외와 김 위원장 내외는 장군봉 정상에 마련한 의자와 티테이블에 앉는 걸 사양하고 산책을 계속 했다. 김 위원장이 “중국 사람들이 부러워합니다. 중국 쪽에서는 천지를 못 내려갑니다. 우리는 내려갈 수 있습니다”라고 하자 문 대통령은 국경이 어디인지 물으며 두리번거리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에게 남쪽 끝자락에 있는 한라산 백록담도 소개했다. 문 대통령은 “한라산에도 백록담이 있는데 천지처럼 물이 밑에서 솟지 않고 그냥 내린 비, 이렇게만 돼 있어서 좀 가물 때는 마릅니다”라고 말했다. 천지 얘기가 나오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좀 더 설명해주고 싶었던지 옆에서 수행중인 보장성원(북측 지원인력)에게 천지 수심 깊이를 물었다. 리 여사가 먼저 “325미터입니다”하며 답했다.
리 여사는 “백두산에 전설이 많습니다. 용이 살다가 올라갔다는 말도 있고, 하늘의 선녀가, 아흔아홉 명의 선녀가 물이 너무 맑아서 목욕하고 올라갔다는 전설도 있는데, 오늘은 또 두 분께서 오셔서 또 다른 전설이 생겼습니다”라며 웃었다.
김 위원장은 “백두산 천지에 새 역사의 모습을 담가서, 백두산 천지의 물이 마르지 않도록 이 천지 물에 다 담가서 앞으로 북남 간의 새로운 역사를 또 써 나가야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도 “이번에 제가 오면서 새로운 역사를 좀 썼지요. 평양 시민들 앞에서 연설도 다 하고….” 라며 감회에 젖었다. 리 여사는 “연설 정말 감동 깊게 들었습니다”라고 화답했다.
남북 정상 내외 장군봉에서 '찰칵'
"오늘 천지에 내려가시겠습니까?" 김 위원장이 물었다. 문 대통령은 "예" 하고 웃으며 "천지가 나무라지만 않는다면 손이라도 담궈보고 싶습니다" 하고 답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 겨울 코트 차림이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김 위원장은 내려가기 전 천지가 가장 잘 보이는 장군봉에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제안했다. 네 사람끼리도 찍고 양측 수행원들과 단체 사진도 번갈아가며 찍었다.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촬영을 마치고 내려가면서도 네 사람의 대화가 끊이질 않았다.
남북 정상 내외 일행은 천지로 내려가는 케이블카가 있는 향도역에 도착했다. 케이블카는 북한에서 ‘삭도열차’로 불린다. 열차를 타고 내리는 곳이니 탑승장도 ‘역’이다. 양 정상 내외는 승강장으로 이동하자마자 바로 케이블카에 올라탔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문 쪽에, 김 여사와 리 여사는 안 쪽에 부부끼리 마주 앉은 채로 천천히 내려갔다. 케이블카에서 내린 양 정상 내외는 물가 쪽에서 계속 담소 나누며 산책을 즐겼다. 문 대통령 내외는 백록담 물을 채워온 500ml짜리 생수병을 열어 천지에 합수도 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천지를 반 시간 가량 산책하고 삼지연초대소로 이동했다. 이곳에는 방북 일행들을 위한 환송 오찬이 준비돼 있었다. 이날 문 대통령 내외와 공식수행원들은 삼지연공항에서 곧장 성남서울공항으로 귀환했다. 문 대통령의 방북은 이렇게 길고도 짧게 막을 내렸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20일 오전 김정은 국무위원장, 리설주 여사와 백두산 천지를 산책하며 물에 손을 담그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평양공동취재단,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