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지난 28일 서울 서대문우체국 사옥 2층에 위치한 마포우체국 물류과. 오전 8시를 앞둔 시간이지만 이미 출근한 집배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이날 배달할 일반우편·등기·택배·국제배송 등의 우편물을 각 팀별로 분류하는 작업이 한창이다.
7시부터 출근한 각 팀의 분류 담당 집배원들이다. 아침 이른 시간이지만 이미 집배원들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어느덧 팀별 분류 작업이 마무리됐다. 사무실 중앙에서 분류 작업을 하던 집배원들은 각자의 팀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자 곳곳에서 삑, 삑 하는 소리가 났다. 집배원들이 할당받은 우편물의 바코드 인식 작업을 하는 소리다. 집배원이 바코드 인식기로 받는 사람의 전화번호가 있는 우편물의 바코드를 읽으면 '오늘 ○시~○시 사이에 우편물이 도착할 예정입니다'라는 문자나 카카오톡 메시지가 발송된다.
오전 9시. 바코드 작업까지 마무리한 집배원들이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오토바이로 향했다. 기자는 서강팀에서 창전동을 담당하는 박성원(36) 집배원을 따라나섰다. 마포구 양화대교 남단의 광흥창역을 비롯한 창전동 일대 중 일부가 그의 담당이다. 대학교와 신촌·홍대 등의 상권이 있는 이곳은 젊은 1~2인가구가 밀집한 지역이다. 그만큼 우편물량도 많다. 박 집배원을 비롯한 4명이 함께 이 일대를 담당한다. 오토바이의 뒷 바구니에 모든 우편물을 담을 수 없다. 때문에 각 지역에 거점이 운영된다. 우체국에서 해당 지역의 우편물을 차로 거점에 가져다 놓는다. 집배원들이 거점에서 각자의 오토바이에 물건을 싣고 각 가정을 방문하는 방식이다.
박성원 집배원이 서울 마포구 창전동에서 우편물 배달을 하며 PDA에 수신인의 이름을 입력하고 있다. 사진/박현준 기자
박성원 집배원 오토바이 바구니에 우편물이 꽉 찬 모습. 박 집배원은 하루에 세 바구니 이상의 배송 물량을 소화하고 있다. 사진/박현준 기자
박 집배원이 먼저 찾은 곳은 주택가 골목이다. 다세대주택이 밀집했다. 오래된 건물들이 많다보니 엘리베이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반 우편은 1층의 우편함에 넣으면 되지만 등기는 반드시 본인에게 직접 전달해야 한다. 계단을 오르내릴 수밖에 없다. 햇살이 강하지 않은 흐린 날씨였지만 이미 그의 얼굴은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는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면서도 손에 쥔 PDA 단말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택배나 등기를 직접 전달하면 수신인이 받았다는 확인으로 PDA에 자신의 이름을 적는다. PDA가 이를 인식해 바른 글자로 표시되지만 흘려 쓴 글자이다 보니 잘못 인식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집배원들이 PDA의 문자 버튼을 눌러 다시 올바른 이름으로 입력해야 한다.
오래된 주택 사이에 새 오피스 빌딩과 원룸 건물이 눈에 띈다. 주택을 허물고 새로 올린 건물이다. 주택이 있던 곳에 빌딩이 들어섰으니 그만큼 사람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박 집배원은 "마포구에 새 빌딩이 늘어나며 우편물도 지속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택가를 지나 고층 오피스텔로 들어섰다. 오피스텔은 관리실이 잘 갖춰져있고 엘리베이터도 있어 우편 배송이 한결 수월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낮 시간에 사람이 없는 집이 많고, 있다고 해도 문을 잘 열어주지 않는다. 초인종을 수차례 눌러도 반응이 없자 등기 우편물이 왔다고 전화를 하면 그제야 집에서 나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날 찾은 한 가정의 택배에는 '문 앞에 두세요'라는 메시지가 있었지만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문은 활짝 열려있고 공사 인부들도 있다. 수신인은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이런 경우 분실을 우려해 문 앞에 두지 않고 다음날 다시 방문한다.
오피스텔 물량을 마무리했다. 다음은 1층 상가다. 상가는 일반 우편물도 각 상점에 들어가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상가의 공동 우편함이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상가는 우편함을 설치해야 하지만 각 상점의 주인이 제각각이라 의견을 모으기도 어렵다. 각 상점을 직접 방문하느라 더 바쁘다. 하지만 매일 얼굴을 마주하는 직원들과는 친분이 쌓였다. "안녕하세요~우체국입니다"라는 인사말로 가게 문을 열면 직원들이 반갑게 맞이했다. 음료수를 건네는 곳도 종종 있다.
박성원 집배원이 무인택배함에 택배 물건을 넣고 있는 모습(왼쪽)과 등기 전달을 위해 계단을 오르는 모습. 사진/박현준 기자
우편물로 꽉 찼던 바구니도 어느새 바닥이 보였다. 9시부터 배송을 시작해 어느덧 3시간이 흘렀다. 박 집배원은 그제야 길 한 곳에 오토바이를 세우고 물 한 모금을 들이켰다. 3시간만의 휴식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하루 물량을 소화할 수 없다. 그나마 여름은 물량이 덜한 편이다. 9월부터 농가의 추수가 시작되고 추석이 다가오면 물량이 쏟아진다. 특히 절임배추와 쌀 등 농산물 배송은 무겁기 때문에 몇 배로 힘들다. 연말 쇼핑 시즌과 신정, 설날 등이 이어지며 3월까지는 여름보다 많은 물량을 소화해야 한다. 퇴근 시간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
집배원 인력이 모자라다 보니 여름휴가도 일반 직장인들만큼 쓸 순 없다. 보통 주말을 포함해 4일 정도 휴가를 떠난다. 그래도 일주일 중 가장 바쁜 화요일은 동료들에게 미안해 피해야 한다. 주말의 온라인 쇼핑 물량이 월요일에 각 업체에서 출하되면 화요일에 우체국으로 쏟아지기 때문이다.
오후 배송까지 마치면 우체국으로 돌아간다. 다음날 배송할 우편물의 세부 분류 작업을 미리 해놔야 한다. 힘들지만 보람을 느끼며 배송을 한다는 그다. 자신의 손을 통해 소중한 물품들이 주인을 찾아가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잔뜩 흐린 하늘에서 결국 비가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서둘러야겠다"고 미소를 지으며 기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물 한 모금과 잠깐의 휴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한 그는 다시 오토바이에 올랐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