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아동의 출생등록 될 권리' 첫 인정

"모 국적 없는 '미혼부 자녀' 출생신고 받아줘야"…'사랑이법' 적극적 해석기준 제시

입력 : 2020-06-09 오후 3:26:59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외국인 생모가 본국의 여권 무효화 조치로 인해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발급받지 못하는 경우에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이상 아동의 '출생등록 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대법원 첫 판단이 나왔다.
 
이번 판단은 가족관계등록법 57조 2항, 이른바 '사랑이법'에 대한 해석 기준을 명확히 한 것으로, 그동안 이 조항을 좁게 해석해 온 하급심들이 비슷한 상황에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는 아동들을 보다 두텁게 보호할 수 있게 됐다. 
 
대법원 1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A씨가 중국 국적의 사실혼 관계에 있는 처와의 사이에 태어난 자녀의 출생신고를 허가해달라며 낸 신청사건에서 이를 기각한 원심을 깨고 A씨의 신청을 받아들였다고 9일 밝혔다.
 
대법원 청사 전경. 사진/대법원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에 대해 국가가 출생신고를 받아주지 않거나 복잡한 절차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려 결국 출생신고를 받아주지 않는 것과 같은 결과가 발생한다면 그 아동으로부터 사회적 신분을 취득할 기회를 박탈하게 된다"면서 "이는 헌법상 보장된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 및 아동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국가가 운영하는 제도를 이용하려면 주민등록과 같은 사회적 신분을 갖춰야 하는데, 사회적 신분 취득은 개인에 대한 출생신고에서부터 시작한다"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태어난 아동은 태어난 즉시 ‘출생등록될 권리’를 가지고, 이러한 권리는 ‘법 앞에 인간으로 인정받을 권리’로서 모든 기본권 보장의 전제가 되는 기본권이므로 법률로써도 이를 침해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유전자검사 결과 등에 의하면 사건본인은 신청인의 친딸임을 인정할 수 있고, 사건본인의 모가 '출생신고에 관한 사무처리지침' 8조에서 정한 출생신고에 필요한 서류를 구비하지 못한 이유는 가족관계등록법 57조 2항에서 정한 '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한다"면서 "결국 신청인은 이 사건 조항에 따라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사건본인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고 판시했다.
 
A씨는 2013년 6월 귀화허가를 받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뒤 중국 국적의 여성 B씨와 국내에서 사실혼 관계를 맺고 생활했다. 두 사람은 2018년 9월 청주에 있는 한 병원에서 자녀를 출산한 뒤 곧바로 관할청에 출생등록을 신청했지만 거부당했다. 
 
그 사정은 이랬다. B씨는 2009년쯤 중국 당국으로부터 여권갱신을 불허당한 뒤 일본정부에 난민신청을 내 지위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여권이 아닌 일반 여행증명서만 발급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녀 출생신고에 앞서 등록해야 할 혼인신고에 필요한 서류 등을 발급받을 수 없었다. 결국, A씨로서는 졸지에 미혼부 신분이 된 것이다. 
 
A씨가 법원에 자녀의 출생신고를 허가해달라는 신청을 제기했지만, 역시 좌절됐다. 원심은 "가족관계등록법 57조 2항에 따라 '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이어 "그러나 이 사건본인의 경우에는 모가 외국인이지만 출생증명서에 모의 성명과 출생연월일, 국적이 기재돼 있고 그 내용이 '출생아의 모'란의 기재내용과 일치하기 때문에 '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A씨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A씨가 재항고 했다.
 
가족관계등록법 57조 2항, 이른바 '사랑이법'은 미혼부의 자녀 출생신고를 간소하게 함으로써 출생 아동의 인권을 보장할 목적으로 2015년 5월18일 가족관계등록법이 개정되면서 신설됐다. 이에 따라 '모의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부의 등록기준지 또는 주소지를 관할하는 가정법원의 확인을 받아 출생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해당 조항에 대한 명확한 해석기준이 없어 하급심은 그동안 이를 좁게 해석해왔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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