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제주항공이 이스타항공 인수 포기를 공식 선언하면서 아시아나항공의 운명에도 시선이 쏠린다. 아시아나항공 인수자인 HDC현대산업개발 또한 딜 클로징을 미루고 있는 상황으로, 시장에서는 인수 포기에 가깝다고 보고 있다.
2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말부터 진행된 HDC현산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 딜은 코로나19 등의 돌발변수로 좀처럼 속도가 나질 않고 있다. 미뤄지기만 하는 인수에 아시아나항공은 딜 무산을 염두에 두고 태스크포스팀(TFT)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항공-이스타항공 인수가 무산되면서 HDC현산-아시아나항공 딜 결과에도 관심이 쏠린다. 사진/각 사
제주-이스타 딜 무산…HDC현산 명분 될까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 사례는 HDC현산의 인수 포기를 위한 전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큰 틀에서 보면 두 회사 모두 코로나19로 인한 항공업 침체로 이번 딜 체결을 망설인 것이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제주항공이 먼저 백기를 들면서 HDC현산은 제주항공의 사례를 명분 삼을 수 있게 됐다.
항공업계 두 건의 딜이 비슷한 길을 걸어왔다는 것도 아시아나항공 인수 무산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앞서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은 체불임금과 셧다운에 대한 책임을 놓고 진실공방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인수자인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 경영진을 직접 만나지 않고 서면이나 공문을 통해 입장을 전달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향후 소송전을 대비한 행보라고 풀이하기도 했다.
HDC현산과 아시아나항공 또한 직접 만나는 것 대신 서면과 공문을 통해 입장을 전하고 있다. 앞서 HDC현산은 협의 없이 아시아나항공이 산은에 돈을 빌리고 계열사를 지원했다고 주장했고 아시아나항공은 보도자료를 통해 반박에 나서기도 했다.
최근에도 아시아나항공 주인인 금호산업이 인수거래를 마치자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HDC현산 측에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내용증명에는 HDC현산이 이에 응하지 않으면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매도자인 이스타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세세한 사정은 차이가 있어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는 시선도 있다.
이스타항공은 현재 전 노선 운항 중단에 직원 월급도 5개월째 체불한 상황으로, 고용유지지원금 등 정부의 지원을 대부분 받지 못했다. 고용지원금을 받지 않은 건 구조조정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보인다. 고용지원금을 받는 동안은 구조조정이나 해고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아시아나항공은 정부로부터 꾸준한 지원을 받고 있다. 고용지원금을 비롯해 채권단인 KDB산업은행으로부터 코로나19 이후 1조7000억원도 빌렸다. 아울러 여객 수요는 줄었지만 화물 호황 덕에 수익 창출도 할 수 있어 수익이 0원인 이스타항공보다는 여러모로 사정이 낫다.
서울 강서구 소재 아시아나항공 본사. 사진/뉴시스
'콩고물vs승자의 저주'…HDC현산의 선택은
항공사인 제주항공이 코로나19를 맞아 자금난에 허덕이는 것과 달리 HDC현산의 경영 사정도 나쁘지 않다.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HDC현산은 올해 상반기 10건의 공사 물량을 수주했는데 규모로는 3조3299억원이다. 전년 같은 기간 수주 규모 2조1531억원보다 54.7% 크다. 2분기 영업이익은 전 분기보다 늘어난 1400억원대로 예상된다. 지난 1분기에는 연결 기준 1373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는데 전년보다 35.3% 증가한 수치다. 코로나19 이후 오히려 영업이 잘되고 있는 셈이다.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해 정부로부터 공사 물량 수주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HDC현산이 지난 6월 한 달간 수주한 물량만 2조원 가까이 된다"며 "정부가 밀어준다면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대한 부담을 덜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제주항공과 달리 본업에 문제가 없지만 아시아나항공의 급격한 부채비율 상승과 항공업 자체에 대한 불확실성 등 여러 변수가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금융투자업계 등에 따르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두고 HDC현산 내부에서는 의견이 반으로 갈라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실무 경영진들이 반대하면서 인수 무산에 힘이 실리고 있다"며 "HDC현산이 최근 인수 원점 재검토 의사 등을 밝힌 것을 봤을 때 당초보다는 의지가 약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HDC현산과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은 지난달 재협상 이야기가 나온 지 40일이 지나도록 아직 테이블을 마련하지 못한 상황이다. HDC현산은 인수에 대한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반복하면서도 아시아나항공 부채비율 상승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아울러 선결조건이 마무리되지 않아 딜을 진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한편 제주항공과의 딜 파기로 파산이 유력한 이스타항공과 달리 아시아나항공은 인수가 무산되면 다시 매물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항공 업황 악화로 적당한 매수자를 찾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