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항공 판박이?…HDC현산도 '선행조건'에 태클

아시아나에 인수 지연 책임 돌리기…'명분쌓기' 지적

입력 : 2020-07-27 오후 3:30:12
[뉴스토마토 김지영 기자]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추진해온 HDC현대산업개발이 재실사 요구와 함께 매도자가 선행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면서 딜 포기를 위한 명분 쌓기에 돌입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제주항공도 이스타항공이 선행조건을 이행하지 않았다며 인수 포기를 선언한 바 있다.
 
27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재실사를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양측 갈등의 골도 깊어짐에 따라 이번 딜이 무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특히 HDC현산이 딜 지연에 대한 책임을 아시아나항공으로 돌리려는 행보를 보이면서 제주항공처럼 인수를 최종 포기할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HDC현산은 최근 아시아나항공 매각 주체인 금호산업이 보낸 인수를 촉구하는 내용의 공문에 "계약상 진술과 보장이 중요한 면에서 진실, 정확하지 않고 명백한 확약 위반 등 거래종결의 선행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음을 회신했다"고 밝혔다.
 
HDC현대산업개발이 재실사를 요구하며 아시아나항공에 인수 지연 책임을 돌리고 있다. 사진/각 사
 
"어디서 봤는데?"…선행조건 이행 문제 삼은 HDC현산
 
금호산업은 지난 14일 HDC현산에 "러시아 등 해외에서 기업결합신고가 모두 끝나 인수 선행조건이 마무리됐다"며 계약 종결을 촉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항공사는 인수·합병(M&A) 시 자국 외 영업하는 다른 국가에서도 기업결합신고를 하고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행정적인 절차가 모두 끝났으니 인수를 마무리 지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HDC현산의 설명은 다르다. 기업결합신고 외에 다른 선행조건들이 있고 아시아나항공이 이를 지키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특히 인수를 위한 자료를 아시아나항공이 충분히 제공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선행조건이 마무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딜을 끝낼 수 없다는 설명인 셈이다.
 
당초 이번 인수 마무리는 선행조건이 모두 충족되는 날로부터 10일이 지난 날에 유상증자와 구주매매계약을 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4월 말에 거래가 끝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해외 기업결합 승인이 늦어지면서 일정이 미뤄졌다.
 
법조계 관계자는 "M&A 시 선행조건 주요 조항에는 '진술 및 보증의 정확성'이 있는데 HDC현산이 이를 문제 삼으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 때문에 아시아나항공이 실사에 성실히 임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이스타항공을 인수하기로 했던 제주항공도 선행조건을 문제 삼으며 인수를 포기했다. 제주항공은 이스타항공이 체불임금을 비롯해 미지급금 1700여억원을 해결하지 않으면 인수를 포기하겠다고 밝힌 후 이스타항공이 이를 이행하지 못하자 실제로 계약을 파기했다. 이스타항공은 당시 "미지급금 해결은 선행조건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서울 강서구 소재 아시아나항공 본사. 사진/뉴시스
 
커지는 '갈등의 골'…남은 건 계약금 싸움?
 
이밖에 HDC현산은 △2019년 내부회계 관리제도에 대한 외부감사인의 부정 의견 △부채 2조8000억원 발생과 1조7000억원 추가 차입 △영구전환사채 추가 발행으로 매수인의 지배력이 약화하는 점 △아시아나항공 기내식 관련 계열사 부당 지원 △계열사 간 저금리 차입금 부당지원 △라임자산운용 사모펀드 투자 손실 △포트코리아 런앤히트 사모펀드를 통한 계열사 부당지원을 문제 삼으며 거래를 지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특히 추가 차입과 계열사 부당 지원은 HDC현산과 협의한 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HDC현산의 공문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딜 무산을 염두에 두고 태스크포스(TFT)도 꾸린 것으로 알려졌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성공적인 M&A 종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왔으며, 앞으로도 당사가 거래종결까지 이행해야 하는 모든 사항을 성실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HDC현산과 아시아나항공의 계약이 수포가 된다면 양측은 계약금을 두고 법정공방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HDC현산이 지급한 계약금 2500억원으로 전체 인수 규모의 10% 수준이다.
 
김지영 기자 wldud91422@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김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