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팩트 체크' 필요한 한진·산은의 인수 논리

입력 : 2020-11-30 오전 5:31:00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무산되면 대한민국 항공산업은 붕괴되고 10만여명의 일자리는 정말 사라질까.
 
국내 1위 대한항공과 2위 아시아나항공 합병이라는 '빅딜'을 앞두고 항공업계가 시끄럽다. '거대 항공사들의 만남'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지만 이번 인수가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행동주의 사모펀드(PEF) KCGI의 경영권 분쟁과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다.
 
조 회장과 KCGI는 내년 정기 주주총회를 앞두고 그룹 지주사 한진칼의 지분을 꾸준히 늘려왔다. 조 회장은 우호 세력을 포섭하며 경영권 방어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현재 KCGI가 지분율이 앞서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고민을 한방에 해결하게 됐다. 아시아나항공 채권단인 KDB산업은행이 한진칼 지분을 확보해 조 회장에 힘을 실어주는 방식으로 인수를 진행하자고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잘 나가던 인수는 KCGI의 신주 발행 금지 가처분 신청에 새 국면을 맞았다. 한진그룹과 KDB산업은행이 딜을 성사시키기 위해 '협박'에 가까운 논리를 펴게 된 배경이다.
 
경영권을 어떻게든 지켜야 하는 조 회장과 아시아나항공을 빠르게 매각하고 싶은 산은은 힘을 합해 이번 인수는 항공업 재편이 목적이며 아시아나항공의 경영난이 심각한 수준인 만큼 빠르게 새 주인을 찾지 못하면 파산할 것이라고 재판부와 여론에 겁을 주고 있다. 나아가 아시아나는 물론 가만히 있던 대한항공 직원들의 일자리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의 주장대로 두 항공사의 합병이 코로나19 이후 시너지나 항공업계 재편 효과를 낳을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인수가 무산된다고 두 항공사에 돌발 변수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딜이 무산되면 아시아나항공은 원래 계획대로 채권단 관리를 받으면 된다. 대한항공 인수 때보다 혈세 투입은 많아질지 모르지만 당장 파산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인수 불발 후 두 항공사가 어려움에 빠진다고 해도 이는 이전부터 경영난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딜 무산 자체가 원인이라는 건 과한 주장이라는 말이다. 
 
며칠 전만 해도 서로 쳐다보지도 않았던 두 항공사가 갑작스레 이렇게 빠른 속도로 합병을 추진하는 것도 놀라운 마당에, 한 가족이 되지 않으면 국내 항공업계가 함께 망한다는 빠진다는 논리가 큰 설득력은 없는지 예상대로 논란은 커지고 있다. 심지어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오히려 구조조정이 우려된다며 길거리로 나섰다.
 
항공업계 직원들은 코로나19로 이미 고용에 대한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전 항공사가 순환 휴직을 하고 있고 정부의 지원금이 끊긴 저비용항공사(LCC)들은 11~12월엔 직원을 절반씩 나눠 한달씩 급여를 아예 지급하지 않기로 했다. 현실을 비관한 한 항공사 직원의 안타까운 죽음 소식도 전해졌다. 누가 봐도 의혹을 살 만한 딜 방식을 마련해놓고 이를 설득하기 위해 직원들의 불안을 이용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김지영 산업1부 기자 wldud91422@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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