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효선 기자] 경찰의 ‘가짜 수산업자’ 김모씨 금품 로비 의혹 수사가 이달 마무리됐다. 경찰은 김씨가 금품을 건넨 것으로 알려진 수십명의 정관계 인사 중 7명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뇌물 혐의를 입증하지 못한 채 수사는 8개월 만에 끝났다.
고소·고발인과 변호인들은 경찰서에서 소장 자체를 받지 않거나 시간만 끌다 사건을 종결 처리한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일선 경찰들은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고 있다. 수사권 조정의 일시적 후유증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 사건 처리기간, 권익위 권고 넘어서
경찰의 사건 처리기간은 권익위원회 권고 수준을 넘어섰다. 행정안전부령 경찰수사규칙에 따라 경찰은 고소·고발 사건 수사를 원칙적으로 3개월 이내에 마쳐야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10월 경찰 수사 사건 1건당 평균 처리 기간은 61.9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53.2일) 대비 8.7일 늘어난 수치다.
경찰의 사건 처리기간은 해마다 길어지고 있다. △2017년 43.9일 △2018년 49.4일 △2019년 50.8일 △2020년 56.1일 등에 이어 올해 연간 평균도 60일을 넘어선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경찰 수사관 1인당 담당 건수가 많아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같은 기간 수사관 1인당 사건 보유건수는 17.9건으로 전년(15건) 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 내부에서는 곡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 소재 경찰청 소속 A씨는 “행정 업무가 너무 몰려 죽겠다”면서 “경제팀은 몰려드는 사기사건 때문에 정말 괴롭다고 들었다. 조만간 인사 개편이 있는데 그곳(경제팀)으로는 배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변호인들 “증거 찾아오란 서도 있어”
사건 당사자들과 변호인들은 불만을 쏟아낸다. 검찰에 고소·고발장을 제출했다 반려되는 사례가 빈번하고, 경찰에 고소·고발장을 접수하더라도 수개월의 시일이 지나 불송치 결정이 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강신업 변호사(법무법인 하나)는 “어떤 서에선 (고소인에게) 민사 소송을 통해 증거를 찾아오라고 하는 곳도 있었다”면서 “수사 기간이 너무 길어져 고소인, 피고소인 양측 모두 불안해하고, 경찰들도 현장에서 너무 고생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사건 진행이 답답하게 흘러간다는 지적이다.
강 변호사는 “수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사건이 오염될 가능성이 높고, (검경 간) 사건을 핑퐁하는 사이 실질적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거악”이라며 “과연 이 수사권 분리가 누구를 위한 분리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경찰이 송치한 사건에 대한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도 늘고 있다. 대검찰청 등에 따르면 올해 ‘검찰 순송치 사건’에 대한 검찰이 경찰 측에 보완수사를 요구한 건수(누계 기준)는 △3월 1만4968건에서 △6월 3만5098건 △9월 8만9914건으로 집계됐다. 이달까지 검찰의 보완수사 요구 건수는 10만건 안팎으로 추정된다.
한 핀테크 전문 변호사는 “IT금융범죄 사건은 어려운 분야라 그런지 (경찰에서) 사건 수리 자체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웬만하면 민사로 처리하라고 돌려보내는 경우도 빈번하다”고 말했다. 그는 “경찰이 검찰보다는 고압적인 면은 덜하지만 절차만 더 복잡해지고, 무엇보다 사건 처리 자체가 안 되니까 결론적으론 비효율적”이라고 꼬집었다.
서초동에서 형사사건을 많이 처리하는 또 다른 변호사는 "사건처리 시간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피의자로서는 나쁠 게 없다. 피해자만 죽어난다"며 "결국 심리적 부담으로 재판으로 가기도 전에 사건을 포기하는 예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경찰, 사건 평준화 방점 조직개편 계획
경찰 업무 과다 현상과 사건 지연 처리 등에 대한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자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지난 27일 열린 정례간담회에서 “고소·고발이 늘어난 이유도 있고 책임수사 체제가 되면서 수사 완결성을 높이다보니 처리 기간이 늘어난 것 같다”며 “내년에는 집중수사기간을 설정해 지연된 사건들을 신속하게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범죄 추세가 변하고 있어 수사 인력과 조직 개편 필요성이 있다”며 “필요한 기능은 통합하는 등 여러 노력으로 직원들의 어려움을 해소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관서·부서별 사건 처리 및 보유 현황 등을 분석해 사건 평준화에 방점을 둔 조직 개편을 계획하고 있다. 사건 집중수사기간을 운영하며 사건 처리기간도 단축한다는 구상이다.
경찰청 국수본 관계자는 “관서별로 (사건 맡는 건수)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고, 관서 내 팀별로도 차이가 있다”며 “인력과 예산에는 한계가 있다 보니 사건 배당 조정 등을 통해 현재 가진 자원을 최적으로 활용하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종합적인 사안들을 국수본에서 시·도청과 함께 체크하고 있다”며 “특정 사건이 과도하게 방치되거나 지연되지 않도록, 사건을 신속 처리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진/뉴시스
박효선 기자 twinseven@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