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 '북한 비핵화' 표현 쓴다"

한·미 2+2장관회담에서 블링컨 미 국무 "한반도 비핵화 정책 유지"

입력 : 2024-11-05 오후 4:12:55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미 국무부에서 열린 '제6차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 장관, 조태열 외교부 장관,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 (사진=뉴시스)
 
한국과 미국의 외교·안보 분야 최고위 인사들이 '비핵화'의 범위에 대해 다른 표현을 써 그 배경에 눈길이 쏠리고 있습니다.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국무부에서 조태열 외교부 장관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 미국의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이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를 했는데요. 이 회의 후 공동 기자회견 모두 발언에서 한국 측 조태열 장관과 김용현 장관은 "우리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목표를 재확인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이와 달리 "비핵화를 위해 관여할 계획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저희의 정책은 유지된다. 그것은 한반도(Korean Peninsula)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답한 겁니다.
 
한국 외교·국방 장관은 "북한 비핵화" 표현
 
윤석열정부는 해외에서 사용하는 '한반도 비핵화' 표현은 '북한 비핵화'와 같은 의미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비핵화 상태이기 때문에 '한반도 비핵화'는 실질적으로 '북한 비핵화'라는 겁니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는 '비핵화의 최종상태'는 물론 정치적 의미를 두고 오랜 논쟁이 돼온 사안이라는 점에서 이는 설득력이 약합니다.
 
2021년 5월,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공동의 약속"이라고 표현했는데요, 1년 뒤 2022년 5월 윤석열과 조 바이든 대통령의 정상회담 공동성명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공동의 목표를 재확인하고"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윤 대통령은 기자회견 모두 발언 등에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말했습니다.
 
문재인-조 바이든, 윤석열-조 바이든 정상회담 공동성명 모두 "한반도 비핵화"
 
문재인정부에서 외교부 차관을 지낸 최종건 연세대 교수는 <뉴스토마토> 통화에서 "바이든정부는 전임 트럼프정부의 대북 정책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명시한 (2018년 6월) 북미 싱가포르 정상선언에서부터 승계한다고 공약한 바 있다"며 "그렇게 해서 2021년 5월 문재인-조 바이든 대통령 정상회담 공동성명에 '한반도 비핵화'가 명시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최 교수는 이어 "현재 '북한 비핵화'표현을 쓰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면서 "중국은 물론이고 유엔과 일본도 한반도 관련 정책 선언서나 담화문, 대변인 발표에서 '한반도 비핵화'라고 하지, '북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고 덧붙였습니다.
 
2018년 3월 문재인 대통령이 파견한 대북특사단의 일원이었던 윤건영 민주당 의원은 이와 관련해 "한반도 전체에 대한 현재, 미래에 대한 (비핵화) 약속으로 규정돼야한다는 점에서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가 맞다"고 정리한 바 있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표현을 쓴 것이 최근 한국 내 '전술핵 재배치'나 '자체 핵무장' 등 핵보유 여론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시각도 있습니다. 최종건 교수는 "그런 해석도 가능하겠으나, 선후관계를 따져보면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합의를 바이든 정부가 이어받은 것이 그 기원"이라고 말했습니다.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 전날인 10월 30일(현지시간) 한·미 국방장관 안보협의회의(SCM) 공동성명에서는 아예 '비핵화' 단어가 빠지기도 했습니다. 2016년부터 매년 SCM 공동성명에 포함돼온 '비핵화'가 9년 만에 빠지고, 대신 "핵 개발을 단념시키고 지연시킨다"는 표현이 들어간 겁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아래 지난달 31일 아침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9형'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단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한·미 국방장관 공동성명, 9년 만에 '비핵화' 빠지고 "핵 개발 단념·지연" 대체도
 
앞서 지난 3월에는 미라 랩-후퍼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대양주 담당 선임보좌관이 "미국의 목표는 여전히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전제를 두면서도 "이 비핵화로 가는 과정에서 중간 단계 조치(interim steps)를 고려할 것"이라 밝히고, 이어 그의 상관으로 바이든정부의 북핵 문제 담당 실무책임자였던 정 박 국무부 대북고위관리(현재는 퇴직)가 "궁극적인 비핵화로 향하는 과정에 '중간 단계 조치'(interim steps)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비핵화는 하룻밤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게 현실"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또 지난 8월에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11월 5일 대선을 앞두고 발표한 정강정책에서 '북한 비핵화' 문구를 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내가 아니라 한국 정부와 한 SCM에서도 '비핵화' 표현이 빠지면서, 미국이 북한 핵 능력이 고도화한 현실을 인정해 비핵화보다 핵 위협 억제, 비확산으로 초점을 옮기고 이를 공식화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그러자 다음 날 한·미 외교·국방(2+2) 장관회의를 통해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한반도 완전한 비핵화 정책은 유지된다"고 밝히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최종건 교수는 이와 관련해 "미국이 한반도 비핵화를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면서 "비핵화의 중간단계로 북한에 대한 군축(arms reduction)을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군축이라는 표현은 미국내 정치에서 수용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비핵화 표현을 쓴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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