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진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예고한 대로 13일(현지시간) 상호 관세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다만 '즉각 발효'가 아닌, '4월1일 이후'라는 시한을 정해 협상의 여지를 남겨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뿐만 아니라 부가가치세를 포함한 각종 세금, 보조금, 규제, 환율, 임금 등 비관세 장벽까지 포함해 미국의 무역적자를 만회하는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목표도 밝혔는데요.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한국도 미국 입장에선 대표적 무역적자 국가라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보입니다. '공정성'을 앞세워 국가별 맞춤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치광이 전략(Madman Theory·매드맨 전략)'에 대해 자유무역 질서를 무너뜨리고 무역 전쟁을 촉발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나옵니다.
"상호관세는 공정…4월2일부터 부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상호호혜적 무역과 관세'라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무역 분야 핵심 참모인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와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이 배석했습니다. 그는 서명하면서 "상호 관세 시스템이 무역관계에서 공정성을 회복하게 만들 것"이라며 "우리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닌) 평평한 운동장을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모두에게 공정할 것이며, 다른 어느 나라도 불평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상호 관세 부과를 위해 검토할 요인으로 각 국이 미국 상품에 부과하는 관세와 함께 비관세 장벽 또는 조치를 지목했습니다. 각서는 비관세 장벽과 조치에 대해 "수입 정책, 위생조치, 무역에 대한 기술적 장벽, 정부 조달, 수출 보조금, 지적 재산권 보호 부족, 디지털 무역 장벽, 정부가 용인하는 국영 또는 민간 기업의 반경쟁적 행위 등을 포함해 정부가 부과한 모든 조치와 정책, 비금전적 장벽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그는 각서에서 "부가가치세를 포함해 무역 상대국이 미국 기업, 근로자 및 소비자에게 부과하는 불공정하고 차별적 세금이나 역외 부과 세금"도 상호 관세 책정의 검토 요소라고 밝혔습니다. 아울러 환율 정책과 임금 억제 정책, 미국 기업의 시장 접근을 불공정하게 제한하는 관행 등도 검토 대상으로 꼽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상호 관세 집행을 총괄할 러트닉 지명자는 "국가별로 다룰 것"이라며 국가별 검토·협상을 거쳐 차등화된 관세율을 적용할 것임을 시사했습니다. 이어 "이 문제에 대한 행정부 차원의 연구는 4월1일까지 마무리될 것"이라며 "대통령에게 4월2일부터 (상호 관세 부과를) 시작할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래픽=뉴스토마토)
'마이웨이' 트럼프에 "자기 발에 총 쏘는 꼴"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 관세 부과 방침을 공식 선언한 배경에는 미국 시장이 상당히 개방된 데 반해, 무역 상대국들은 폐쇄적이어서 미국이 막대한 무역적자를 보고 있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실제 백악관은 이날 서명 이후 자료를 내고 미국이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사례로 브라질의 에탄올, 인도의 농산물과 오토바이, 유럽연합(EU)의 조개나 자동차 등의 품목을 자세히 언급했습니다.
그러면서 백악관은 "132개국의 제품 라인 60만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2019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수출업체들이 상대국보다 더 높은 관세를 내는 경우가 3분의 2를 넘었다"며 "미국이 더 이상 불공정한 무역 관행의 피해자가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포괄적인 비관세 장벽을 상호 관세의 고려 요소로 삼을 것임을 분명히 함에 따라 한국도 표적이 될 전망입니다. 미국 상부무에 따르면 무역적자액 상위 10위 국가에 한국도 포함돼 있습니다. 한국은 중국, 멕시코, 베트남 등에 이어 무역흑자 8위에 이름을 올렸으며,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액은 557억달러(약 81조원)에 달합니다.
국가별 맞춤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계획에 대해 세계 각 국은 우려를 나타내면서 매드맨 전략이 본격화했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더불어 자유무역 질서를 무너뜨리고 무역 전쟁을 촉발하는 조치라는 비판도 함께 나옵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국제 무역 질서를 무너뜨릴 야심 찬 움직임"이라며 "상호 관세가 글로벌 무역시스템의 대대적인 개편을 가져올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이어 "이번 조치로 대미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들 사이에 치열한 협상전이 벌어질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또 미국의 관세 부과에 대해 보복 관세로 대응하는 국가가 나올 경우 무역 전쟁이 촉발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이번 조치가 시행되면 수십 년간 이어져 온 WTO의 국제 무역 규범이 깨질 수 있다고 우려했으며, <워싱턴포스트(WP)>는 상호 관세 조치가 자유무역주의를 위협하는 것은 물론, 미국인들의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미국 조세재단의 연방 세금 정책 담당 에리카 요크는 "상호주의는 매력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관세를 누가 내는지 기억해야 한다"며 "세금은 미국 수입업체가 내고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자기 발에 총을 쏘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오른쪽) 미국 대통령과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가 13일(현지시간)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공동 기자회견하며 포옹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진아 기자 toyouj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