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권순욱기자]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사랑하는 당원 여러분.
참담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책임지고 싶었던 저희 통합진보당이 선거관리에서 부족했다는 부실을 매섭게 지적받고 무한히 사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 부정의 구렁텅이에 수많은 당의 간부들과 당원들이 완전히 빠져들었다고 비난받는 오늘의 현실은 참기 힘든 고통입니다.
저는 이번 사태에 대해 저에게 주어진 요청이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책임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 당의 법적 대표로서 진보통합의 실질적 주역으로서 통합진보당이 처한 오늘의 현실을 포괄적으로 책임질 위치에 있다는 것, 그래서 가장 무거운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져야할 사람은 저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분명히 합니다.
다른 하나는 진실에 대한 공정한 규명입니다. 도대체 어떤 일이 있었는가, 누가 얼마나 어떤 정도의 책임을 져야하는지 밝혀내자고 누누이 말씀드린 것은 아무 죄 없는 당원들에게는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최소한의 권리와 명예를 지켜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진상조사보고서에 현장투표의 부정사례로 명시되어 거론된 해당 당원들은 진상조사위로부터 전화 한 통 받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완벽히 해명할 수 있고 증언할 사람도 충분한데 전혀 소명 기회도 갖지 못한 채 부정의 당사자로 내몰렸습니다.
과연 누가 진보정치에 십 수 년 몸바쳐온 귀한 당원들을, 야권연대 경선을 힘겹게 치르는 중에도 현장투표소를 운영하기 위해 노력한 아까운 당원들을, 책상머리에서 부정행위자로 내몰 수 있습니까.
진상조사위원회는 진실을 밝힐 의무만 있을 뿐이지, 당원을 모함하고 모욕 줄 권한은 없습니다. 당의 그 누구라도 그런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진상조사위원회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원을 주인으로 여기는 당이라면, 부끄러운 상황을 아무리 빨리 벗어나고 싶어도 당이 처한 상황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당원 한 사람의 명예라도 헌 신짝처럼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당원들의 마지막 남은 자긍심을 지켜낼 것입니다.
이처럼 편파적이고 부실한 진상조사는, 당초 제가 총선 이후 부족한 저를 깊이 성찰하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기 위해 부산의 한 요양원에서 노동자들과 함께 일하기를 자청하여 땀 흘리는 동안 서울을 떠나있는 동안 일어난 일입니다.
다른 세 대표님들께 당무를 맡아 주시고, 당의 단합이 깨어지지 않도록 진상조사를 신중하게 빠른 시간 내에 마무리해주십사 요청 드렸던 불과 2주간이었습니다.
진상조사위가 보고서를 제출하였습니다만, 불신에 기초한 의혹만 내세울 뿐 합리적 추론도 초보적인 사실 확인도 하지 않은 조사방식, 수용할 수 없습니다. 투표 모두에서 정당성과 신뢰성을 완전히 잃었다는 부풀리기 식 결론은 모든 면에서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진상조사위원회가 특정 후보에게 투표한 당원들의 IP 주소를 추출해 유령당원 대리투표 의혹이 있는 것처럼 몰아세웠습니다. 저는 당원들의 개인정보를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비밀투표 원칙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침해되는 것을 방치했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가 온라인 투표의 정당성과 신뢰성이 상실되었다고 발표한 이상, 당원들의 투표내용은 이제 온전히 검찰의 손아귀에 들어갈 것입니다. 2010년 민주노동당 시절, 오병윤 사무총장이 증거인멸죄로 기소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당원들의 개인정보를 보호했던 것을 저는 생생히 기억합니다.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 당의 내부에서부터 일어났습니다.
4월 29일, 잠시 현장에서 떠나 급히 올라와 사태의 일부를 알게 된 이후 오늘까지, 토론하고 협력하면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만 그럴 때마다 사실관계를 밝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은 “정치적 희생양”이 필요한 때라는 답변만 들어야했습니다. “당권파와 함께 당직에서 철수하라“는 압박만 받고 있습니다.
국민들과 당원 여러분께서 투명하게 보아오신 제 삶과 정치활동을 모두 걸고 말씀드립니다.
민주노동당이 분당되어 모두 떠나가던 시절, 곧 소멸하고 말 것이라고 손가락질하던 시절, 민주노동당에 제 발로 들어왔습니다. 민주노동당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들어왔습니다. 당권을 잡기 위해 진보정치에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어느 한 파의 수장으로서 당의 대표를 맡지 않았습니다. 이명박 정부 치하에서 고통 받는 국민의 편에서 함께 땀 흘렸습니다. 그분들의 염원, 진보통합과 야권연대를 성사시키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직 당원들 덕분에 그리하였습니다.
책임져야 할 현실을 피하지 않겠습니다. 오는 6월3일 실시될 당직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를 중심으로 짜여 질 차기 당권구도는 이제 없습니다. 저를 모두 내려놓고 호소 드립니다.
즉각적인 총사퇴는 옳지 못한 선택입니다. 비대위는 당을 장기간 표류시킬 무책임한 발상입니다. 2008년 분당도 비대위 상황에서 빚어진 일이고, 과도기 지도부의 임기도 한 달이 채 남지 않았습니다. 오는 12일 향후 정치 일정이 확정될 당 중앙위원회가 끝나는 즉시 저에게 주어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책임지는 방식입니다. 당을 지켜내고 당원의 명예를 지켜낼 수 있다면, 몸이 가루가 되어도 후회될 일 없습니다. 이미 많은 길을 걸어와서 다시 과거처럼 평범하게 살기는 힘든 몸입니다. 그러나 가장 아래로 내려가 땀 흘리는 노동자의 벗으로 살면 그것으로 행복합니다.
믿고 존경하는 당원 여러분, 통합진보당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극단의 상황에 내몰린 분당의 골짜기도 넘어 역사적인 진보통합과 야권연대를 성사시킨 주역들이 바로 당원여러분들이십니다. 여러분들이 나서 주십시오. 당의 원칙과 정신을 지켜주십시오. 호소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