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자기들끼리 서열을 정해놓고 패거리로 몰려다니며 행패를 부렸더라도 범죄를 목적으로 조직적인 행동을 한 것이 아니라면 '범죄단체'로 볼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일영 대법관)는 와해된 폭력조직의 조직원들을 모아 범죄단체를 구성해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주모씨(34) 등 24명에 대한 상고심에서 '단체 등 구성·활동' 혐의 부분을 무죄로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또 개인적으로 적용된 살인미수와 갈취 등의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원심 판결도 그대로 유지했다.
재판부는 먼저 판결문에서 "비록 특정 다수인에 의해 이뤄진 계속적이고 통솔체제를 갖춘 조직화된 결합체라 하더라도 그 구성원이 범죄에 대한 공동목적을 갖고 있지 않는 한 그 단체를 범죄단체로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 광장에 모여 축구를 한 뒤 단체로 목욕하고 함께 식사하면서 새로운 식구로 활동하기로 했다는 사실만으로는 지역 불량배들을 새로 규합해 범죄단체로 평가할 수 있을 만한 견고한 결속력과 조직력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폭력조직을 결성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피고인들은 범죄단체의 유지 및 활동에 필수적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했다고 볼 만한 자료가 없고, 두목 등 간부급들이 조직원들의 충성심을 유도·유지하기 위해 일자리를 지원하거나 조직의 위세를 과시하는 등 조직적인 범죄를 저지른 일도 없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어 "피고인들 중 일부가 조직을 탈퇴했지만 보복을 하지 않은 점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피고인들이 조직을 실제로 결성했는지 의심스러울 뿐만 아니라 설령 조직을 결성했더라도 이는 지역사회에서의 패거리나 모임에 불과하다"며 "같은 취지의 원심 판결은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1990년대 부여군 일대를 양분한 폭력조직 '봉선화파'와 '신동하파'는 조직간 수차례에 걸친 다툼으로 조직원들이 복역하거나 타지역으로 옮겨가면서 모두 와해됐다. 그러나 이후 두 폭력조직원들 중 남아있는 간부급들이 모여 20여명 규모의 '부여식구파'를 만들었다.
이들은 나름대로 ▲선배를 보면 무조건 90°로 인사한다 ▲선배의 지시에는 무조건 따른다 ▲싸움에는 절대 지지 않는다 ▲2년 이상 차이 선·후배 간에는 맞담배를 피우지 않는다는 등의 규율을 정해 모임을 정비했으나 패거리로 몰려다니면서 외상술을 먹거나 부여지역 술집 상무로 활동하고 조직원간 규율을 잡는다며 싸우는 일이 더 많았다.
검찰은 주씨 등 '부여식구파' 가입자들을 범죄단체 구성 등의 혐의로 기소했으나 1, 2심 재판부는 "지역적인 연고 등으로 형성된 모임에 가깝다"며 범죄단체 구성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결했다. 재판부는 다만 살인미수 혐의가 추가된 주씨에 대해서는 징역 4년을, 외상술을 먹고 행패를 부린 심모씨 등에게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 등을 각각 선고했다.
◇대법원(사진출처=대법원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