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지난 2008년 말 드러난 이재현 CJ 그룹회장 비자금 3000억원에 대해 조세포탈 혐의로 고발할 것을 요구한 경찰의 요청을 서울지방국세청이 묵살한 것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특히 이는 전군표 전 국세청장이 특가법상 뇌물혐의 피의자 검찰 소환 조사를 받기 직전에 드러난 것으로, 전 전 청장의 이번 소환조사가 국세청 수뇌부들의 줄소환의 신호탄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31일 검찰에 따르면 2008년 12월 경찰은 CJ그룹의 조세포탈 혐의가 인정될 경우 고발하도록 협조공문을 보냈다.
당시는 이 회장의 가신(家臣)으로 알려진 CJ그룹 재무팀장 이모씨가 40여개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이 회장의 개인자금 3000억원을 관리한 정황이 드러난 때였다.
이 사실은 이씨가 이 회장의 개인자금을 운영하던 중 형사사건에 휘말리면서 받게 된 형사재판에서 확인됐다. 검찰은 이에 대해 증여 및 상속과정에서 이 회장이 조세를 포탈했다는 의심을 가지고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경찰을 통해 서울지방국세청에 조세포탈혐의에 따른 고발을 요청한 것이다.
그러나 이 회장이 문제의 자금이 선대 회장인 故이병철 회장의 상속재산이라고 밝힌 뒤 서둘러 상속세 1700억원을 자진 납세했다. 이 일이 있은 뒤 서울지방국세청은 자체 심의위원회를 거쳐 고발하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
이런 이유로 당시 검찰의 CJ비자금 수사는 중단됐다. 물론 이를 계기로 내사가 진행되다가 수사로 전환돼 이 회장이 특가법상 횡령 및 배임, 조세포탈 등의 혐의로 지난 18일 구속기소됐다. 그러나 그동안 이 회장의 비자금은 6200억원으로 늘어났다.
이 회장의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은 2006년과 2008년 두 번에 걸쳐 제기됐었지만 그때마다 검찰의 수사망을 피했다. 서울지방국세청이 조세포탈로 고발하지 않은 것이 두 번째인 2008년의 의혹이다.
그러나 이번에 검찰이 사건을 다시 꺼내들어 수사를 시작했다. 검찰은 앞서 지난 27일 허병익 전 국세청 차장을 구속했다. 2006년 세무조사에서 포착된 CJ그룹의 3560억원대 탈세 정황을 덮는 조건으로 이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다.
허 전 차장은 당시 국세청 법인납세국 국장이었고 위로는 전 전 청장이 있었다. 허 전 차장은 이 회장이 전달한 미화 30만달러 등 금품을 전 전 청장에게 전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전 전 청장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검찰이 지난 30일 전 전 청장의 자택 등을 압수수색한 것은 2006년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전 전 청장이 이번 소환조사 끝에 사법처리 되면 2006년의 CJ세무조사 무마 로비는 일단락을 보게 된다.
CJ그룹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윤대진)는 2006년 세무조사 무마로비와 함께 2008년의 석연치 않은 로비 의혹도 들여다보고 있다.
당시 서울지방국세청장은 이현동 전 국세청장이 맡고 있었고 국세청장은 한상률 전 청장이 재임하고 있었다. 1700억원대의 조세포탈 의혹에 대한 검찰과 경찰의 고발 요청에 대한 보고와 처리에 대한 직접적인 결제라인에 있었던 것이다.
한 전 청장은 2007년 국세청 차장으로 근무할 당시 인사청탁과 함께 故최욱경 화백의 작품 ‘학동마을’을 받았다는 의혹이 일면서 2009년 1월에 사퇴했다. 그 자리는 허병익 당시 차장이 직무대행을 하다가 백용호 전 청장을 거쳐 이현동 전 청장에게 이어졌다.
백 전 청장을 빼고는 2008년 당시 의혹에 2006년 CJ 세무조사 무마 로비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허병익 전 차장과 이현동 전 국세청장,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다시 엮여 있는 것이다.
당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허 전 차장이 구속된 상황에서 이 전 청장과 한 전 청장의 검찰 소환도 임박했다는 관측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검찰은 전 전 청장에 대한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이미 체포영장을 받아 놓은 상태로, 피의자 신분의 전 전 청장을 조사 중 체포하거나 구속영장을 바로 청구해 구속할 채비도 갖춰놓은 상태다.
또 이 회장 등 CJ그룹측이 허 전 차장을 통해 미화 30만달러와 명품 손목시계를 건넸다고 진술하고 있고 허 전 차장 역시 이를 시인하고 있는 가운데 전 전 청장 혼자만이 이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어 전 전 청장과 허 전 차장, 이 회장 등의 대질 심문이 불가피 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