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 여성 호주가 사망하거나 출가해 호주 상속인 없이 절가(자손이 끊어져 상속자가 없어짐)된 경우 그 집안의 유산을 절가된 가족이 상속하고 가족이 없을 때는 출가녀가 승계한다는 민법 제정 전 구 관습법은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유모씨가 이같은 관습법은 여성에게 분재청구권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평등원칙에 위반된다며 낸 헌법소원심판청구 사건에서 4(합헌)대 3(각하)대 2(위헌)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고 5일 밝혔다.
재판부는 우선 이 관습법이 헌법소원심판 대상이 되는지 여부에 대해 “비록 형식적 의미의 법률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헌법소원심판 대상이 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 관습법이 절가된 가의 재산을 그 가적에 남아 있는 가족에게 우선 승계하도록 하는 것은 가의 재산관리나 제사 주재 등 현실적 필요와 민법 시행 이전의 사회상황과 문화를 반영한 것으로 나름대로 합리적 이유가 있다”며 “또한, 호주가 살아 있을 때 출가한 여성에게 재산의 일부 또는 전부를 분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출가한 여성이 상속으로부터 완전히 배제되는 것도 아니어서 평등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또 “민법 제정과 시행으로 이미 폐지된 구 관습법의 효력을 소급적으로 모두 부인한다면 이를 기초로 형성된 모든 법률관계가 한꺼번에 뒤집어져 엄청난 혼란을 일으킬 수 있고, 헌법재판소 재판부가 새로 구성될 때마다 구 관습법의 위헌성에 관해 달리 판단한다면 국가 전체의 법적 안정성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진성·김창종·조용호 재판관은 “관습법은 형식적 의미의 법률과 동일한 효력이 없으므로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이나 헌법재판소법상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관습법이 법적 규범으로 승인됐는지 여부나 승인된 관습법에 대한 위헌, 위법 여부는 물론 소멸 여부에 대해서는 법원이 판단하고 있으므로 관습법에 대한 위헌심사는 법원이 담당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각하 의견을 냈다.
반면, 이정미·안창호 재판관은 “이 관습법은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헌법소원심판 대상이 되지만 호주를 정점으로 하는 남계 혈통을 중요시하는 호주제를 기반으로 집안의 재산은 다른 집안에 있는 자에게 유출되서는 안 된다는 관념을 토대로 한 것”이라며 “출가녀와, 혼인을 하더라도 여전히 가적 내에 남게 되는 남성을 유산 승계에 있어 차별 취급해 혼인과 가족생활에서 양성의 평등을 명한 헌법에 위반돼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유씨는 외동딸인 어머니가 혼인하면서 외가 호적에서 제적된 뒤 외조부에 이어 여성 호주였던 외조모마저 민법 시행 이전인 1954년 3월3일 사망했다. 당시 외가에는 외조부의 이복동생이 가족으로 남아있었는데 그 또한 1963년 6월 일가창립신고를 하면서 유씨의 외가는 호적이 말소돼 절가됐다.
이후 유씨는 절가된 외가의 부동산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귀속됐다며 외조부의 이복동생을 상대로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말소 또는 소유권확인 청구소송을 냈지만 법원은 민법 시행 전 구 관습법에 따라 절가된 가족인 외조부의 이복동생이 출가녀에 우선해 승계한다는 이유로 패소판결했다.
이에 유씨는 해당 구 관습법이 가족관계에서의 양성평등을 정한 헌법에 위반된다며 법원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으나 관습법은 위헌법룰심판 대상이 아니라며 각하하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한편, 호주제는 2005년 민법 개정, 2008년 1월 1일 호적법 폐지 및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시행으로 인해 폐지됐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사진/헌법재판소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