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해훈 기자]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이 대법관과 일제 기업 상대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민사소송 재판을 논의한 정황이 검찰에 포착됐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 신봉수)·특수3부(부장 양석조)는 지난 13일 윤 전 장관을 비공개로 불러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고 14일 밝혔다. 검찰은 이날 오전 9시30분부터 김 전 실장을 조사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실장은 2013년 말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당시 현직 대법관을 불러 해당 재판 진행에 대해 논의하고, 청와대의 요구를 전달했다. 이 자리에는 윤 전 장관도 동석했으며, 해당 대법관은 차한성 당시 법원행정처장으로 알려졌다. 김 전 실장은 차 전 대법관에게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승소한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최대한 재판을 지연하고, 재판부를 전원합의체로 돌리도록 요구했다.
지난 2일 외교부를 상대로 한 압수수색에서 검찰은 이러한 정황이 담긴 자료를 다수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당시 청와대가 대법원의 협조를 대가로 법관의 외국 파견 등을 제시한 것으로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들의 소송은 개인 간 민사소송"이라며 "법관의 양심에 따라 재판하는 것이지 다른 이해관계 등 외부 의사가 개입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대법원이 접촉하거나 요구해도 이를 수용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지난달 31일 외교부 외에도 법원행정처 국제심의관실, 일제 강제 징용 피해자와 위안부 소송 관련 문건 작성 관여 전·현직 판사 여러 명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달 1일 외교부 관련 부서 사무실 외 나머지에 대해 모두 영장을 기각했다. 이후 검찰은 9일 이들 소송 관련 보고서를 작성하고 외교부 관계자들을 접촉한 법원행정처 전·현직 근무자들, 강제징용 재판에 관여한 전·현직 주심 대법관 등에 대해서도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모두 기각됐다.
법원행정처가 2013년 9월 작성한 '강제노동자 판결 관련-외교부와의 관계'란 문건에서도 외교부의 부정적인 의견을 고려해 대법원이 판결을 연기한 정황이 담겨 있다. 여운택씨 등 강제 징용 피해자 4명이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은 1심과 2심에서 원고 패소로 선고됐지만, 2012년 5월 상고심에서 판결이 뒤집힌 후 2013년 파기환송심은 각각 1억원의 배상을 판결했다. 이후 진행되지 않던 이 사건은 지난달 27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 회부됐다.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과 관련해 재판거래 의혹에 연루된 김기춘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1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해훈 기자 ewigjung@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