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경제민주화)“재벌 주도 체질 개선…관건은 중소기업 활성화”

경제력 집중으로 경쟁 제한…공정거래법 규제 복원 필요
“경제민주화는 국민이 정한 헌법정신, 정부가 외면”
“수요 독점화된 구조가 혁신 성장 막고 있다”

입력 : 2024-06-07 오후 5:23:44
[뉴스토마토 이재영 선임기자] 글로벌 공급망에서 소외되고 있는 한국의 경제위기는 경제민주화를 통해서 해결 가능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합니다. 경쟁국들에 비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이 취약한 경제구조는 재벌 중심의 경제력 집중에 의해 경쟁이 제한된 원하청 전속계약관계에서 비롯됐으며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 수단으로 개선될 수 있단 지적입니다. 그러자면 낙수효과로 묘사되는 현 정부 정책 기조부터 바꿔야 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시장경제체제의 장점인 경쟁원리 훼손”
 
7일 이의송 군산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 때 국가적 화두였던 경제민주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연후 시대적 상황과 최근엔 코로나정국을 거쳐 잊혀진 듯해서 상당히 안타깝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회적으로 양극화나 빈부격차 등 경제력 집중 현황이나 문제점이 심하다는 데 이의가 없다는 전제 아래 경제학의 이론과 한국이 왜 경제민주화를 해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입증된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교수는 “시장경제체제의 가장 큰 장점은 제한된 범위 내 시장경쟁을 통해 자원의 효율적 배분과 대체적으로 공정한 분배가 이뤄진다는 것”이라며 “그 전제로 볼 때 시장경제 작동 원리는 경쟁원리”라고 짚었습니다. 이어 “그 반대되는 게 경제력 집중이고 당연히 집중을 완화해야 경쟁이 촉진된다는 점에서 경제민주화는 당위성을 가진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또한 경제민주화가 국민이 정한 헌법정신이라고 해석했습니다. “헌법 전문에선 국가의 존립 목적이 ‘우리와 우리 자손의 안전, 자유, 행복’인데 이를 위한 대내 수단적 목적은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지향하는 것’ 딱 하나다. 그게 경제민주화의 다른 말”이라고 풀이했습니다.
 
이 교수는 “국민생활의 균등향상을 기해야 하는데 민주공화국에서 최소한 공화주의 논의가 너무 빈약하다”며 “경제력 집중 완화와 이를 통한 경제민주화 실현은 필연적이고 이를 위해 경제구조개혁과 사회안전망의 확충, 두 축으로 가야한다. 시장경제에서 경쟁을 억제하는 가장 큰 요소는 재벌체제가 있다. 대기업을 혁파하자는 게 아니라 대기업은 촉진해야 하고 재벌체제 개혁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기술탈취 징벌배상, 디스커버리 필요”
 
경제민주화의 대표적 정책 수단 중 하나는 공정거래법입니다. 이 법도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를 지향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하지만 윤석열정부 들어 동일인 친족범위 축소, 동일인의 법인 지정, 내부거래 공시의무 완화 등 공정거래법 규제가 후퇴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경제민주화를 실현하는 방법론은 이런 공정거래법을 복원시키는 것부터 출발합니다. 이 또한 경제력 집중 억제가 전제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됩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구조적으로 일단 경쟁이 없는 상황에서는 제도가 있다 해도 작동이 안 된다”며 “국내 산업이 너무 독과점화 되고 수요 독점화돼 경쟁이 사라지는 것이고, 문어발식 대기업 경제력 집중으로 산업 진화도 멈춰 있는 것이다. 그 힘을 이용해 (후발주자의)새로운 진입도 막고 있다”고 진단했습니다.
 
근래 대기업도 동반성장과 지속가능 생태계를 지향하며 협력사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구조적 한계에 봉착했습니다. 일례로 삼성과 SK 등 국내 반도체 생태계도 과거의 수직계열화 전략을 고수하며 국내 후발주자가 없습니다. 박 교수는 “반도체 파운드리(위탁생산)도 설계도 다 하겠다고 하니 TSMC에 밀리고 국내 설계 부분도 취약해지는 것”이라며 “중화학공업시대 신화에서 벗어나 탈 수직계열화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박 교수는 대기업 독과점 구조를 개선하는 방법으로 기술탈취를 막는 게 급선무라고 봤습니다. 반도체 설계 분야를 예로, 경쟁이 촉진되려면 기술 탈취 위험부터 막아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구체적으로 기술탈취에 대한 징벌배상과 디스커버리제도 도입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디스커버리는 민사소송에서 기술탈취된 원고측 변호인이 증거 수집 능력을 법원에게서 얻는 제도입니다. 박 교수는 “기술탈취를 입증할 수 있어야 손해배상도 받을 수 있고 소송할 유인도 생긴다. 가해기업은 경각심이 들게 만드는 것”이라고 제도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한편, 일각에선 중소기업과 대기업이 공존할 수 있도록 중기적합업종을 확대하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박 교수는 “중기적합업종 아이디어가 재벌에 대한 규제를 안 하고 경제력 집중을 인정해주면서 중소기업을 도와주겠다는 보완적인 제도”라며 “전속적 계약관계나 수요 독점화되면서 기술탈취 되는 문제들을 해결해야 중소기업들이 혁신해서 성공하는 환경이 조성될 텐데 시장을 나눠주는 식으론 발전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이재영 선임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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