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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 재판이 진행 중이고, 이와 별개로 공수처의 수사와 검찰의 기소에 따른 내란혐의 형사재판이 예정돼 있다. 그러나 계엄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세상은 그야말로 아수라다. 이걸 지켜보는 것으로도 암울한데 여기에 또 하나가 더해졌다.
이재용 삼성그룹 회장이 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벌어진 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을 부당하게 산정해 19개 혐의로 기소됐고, 그에 대한 형사재판 결과였다.
당시 삼성그룹은 제일모직의 3배 규모 자산가치를 지닌 삼성물산을, 제일모직의 3분의 1 값으로 매긴 놀라운 합병비율을 산출했다. 이에 삼성물산 일반 주주들이 반발했지만 삼성은 국민연금을 앞세워 합병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여 통과시켰다.
앞서 1심 법원은 이 회장을 무죄로 판결했고 2심 법원도 다르지 않았다. 이제 대법원만 남았는데 검찰이 상고할지 알 수 없고, 한다 해도 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부당합병으로 인한 주주들의 손실은 실존하는데 합병으로 가장 큰 이익을 얻은 핵심인물은 무죄라는 판결을 어떻게 봐야 할까? 게다가 삼성물산 주주였던 미국의 사모펀드(PEF) 운용사 엘리엇과 메이슨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을 제기해 손해 일부를 인정받았다. 우리 정부가 이에 불복해 취소소송을 냈으나 각하됐고 다시 항소했다. 메이슨도 지난해 4월 손배 판정을 받았다. 물론 정부는 불복, 소송 중이다.
그뿐인가. 국민연금도 삼성물산과 이 회장을 상대로 소송 중이다. 손배소 소멸시효를 앞두고 급하게 소송을 제기한 성격이 강하지만, 엘리엇과 메이슨이 받은 손배를 국민연금이 받지 못하란 법은 없다. 따지고 보면 당시 두 회사의 합병에 반대한 삼성물산 모든 주주들은 소를 제기할 권리가 있다.
이 회장의 항소심 재판부도 이 손배소를 참고할 것이란 시각이 많았으나 결국 무죄다. 우리 법원은 무죄라는데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영국법원 등은 손배 판정을 내렸다. 주주 권익 보호에 둔감한 사법당국. 어쩌면 이것이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떠받치는 또 하나의 축일지 모르겠다.
그걸 확인할 기회가 곧 있을 것 같다. 고려아연이 영풍-MBK의 경영권 장악 시도를 막기 위해 임시주총을 앞두고 벌인 꼼수에 관한 재판 말이다.
고려아연 최윤범 회장은 고려아연의 100% 자회사인 호주 선메탈코퍼레이션(SMC)에게 보유 중이던 영풍 주식을 넘겨 영풍→고려아연→SMC→영풍의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영풍이 가진 고려아연 주식 의결권을 제한, 고려아연 주총에서 영풍 측이 의결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게 막았다.
거액을 들여 자사주를 사들이고, 이 돈을 갚기 위해 대규모 유상증자를 추진하려다 막히자 해외 자회사까지 동원해 일을 벌였다.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기업의 자산이 총동원된 형국이다. 영풍은 곧바로 최 회장 등을 배임과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비이성과 비합리의 날들, 황당함을 넘어 슬프기까지 한 사건사고의 연속이지만 결국 법을 통해 정리될 것이다. 그 결과 우리 법이 특정인과 기업에만 관대한 것인지, 사법 시스템 자체에 문제가 있는지를 확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부디 전자이길 바란다.
김창경 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