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문성주 기자] 정치권이 농협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대신 농협중앙회장의 연임을 허용해 주기로 했다는 의혹이 나온 가운데 여야 모두 해당 내용을 부인하고 나섰습니다. 국토 균형발전 차원에서 농협 지방이전법을 발의한 건 사실이지만, 회장 연임 문제와는 별개 사안이라는 입장입니다. 특히 현 농협 회장부터 소급적용하는 연임 문제는 논의 대상도 아니며 불가하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습니다.
'균형발전 명분' 농협법 개정 추진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여야 의원은 최근 농협 지방 이전을 핵심으로 한 농업협동조합법(농협법) 개정안을 각각 발의했습니다. 민주당 문금주 의원은 지난달 23일 농협중앙회 본사의 지방 이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농협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국민의힘에서는 조경태 의원이 지난 7일 같은 내용의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문 의원은 개정안 발의 배경으로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정부부처나 공공기관 등의 추가 이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현행법은 농협중앙회의 주된 사무소를 서울시에 두도록 규정하고 있어 국가균형발전 정책과 상충된다는 의견이 있다"고 했습니다.
현재 농협중앙회 본사는 서울 중구 5호선 서대문역 부근에 위치해 있습니다. 국회에 따르면 현재 농협중앙회의 주된 사무소의 소재지인 서울시는 지난 2023년 기준 농가인구가 1만3667명으로 전국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농가인구가 가장 적습니다.
주된 사무소를 정관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한 '상호저축은행법'이나 '한국주택금융공사법'을 참고할 때,농협중앙회 또한 주된 사무소의 소재지를 정관으로 정하도록 해야 한다는 게 의원들의 주장입니다.
개정안은 농협중앙회의 주된 사무소의 소재지를 정관으로 정하도록 하고, 주된 사무소의 소재지를 정하거나 지사무소를 둘 때에는 국가균형발전을 고려하도록 함으로써 지역 간의 불균형 해소를 통한 국가균형발전에 기여한다는 취지입니다.
그러나 농협 안팎에서는 농협중앙회와 정치권 간의 입법 거래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습니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NH농협지부 우진하 위원장은 "현재 사측은 이미 셀프연임의 욕심을 드러냈고 공식화했다"며 "셀프연임법 개정을 약속하고, 그 대가로 농협 본사 지방이전을 사측이 허용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노조에 따르면 전임 중앙회장도 회장 연임 허용을 포함한 농협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농협금융 계열사의 건전성을 훼손하는 '농업지원사업비 2배 인상' 등의 법 개정을 반대하지 않은 전례가 있습니다. 농협 연임 개정을 위해 농협의 대국회 로비는 전방위적이라는 지적은 과거부터 계속돼 왔습니다.
농협중앙회장의 단임제 폐지, 즉 연임 허용은 중앙회의 숙원 과제입니다. 과거 연임한 4명의 중앙회장 중 3명이 횡령, 뇌물수수 등 각종 부패 사건에 연루돼 처벌을 받자 2009년 연임제에서 단임제로 변경됐습니다. 이후 중앙회장은 4년 임기로 1회에 한해 회장직을 수행하는 '단임제'로 선출되고 있습니다.
현 강호동 회장 체제의 농협중앙회도 회장 연임 추진 의사를 드러낸 바 있습니다. 지난해 이사회에 배포한 농협 안건자료에는 △회장 연임 1 회 허용 △현직 회장 입후보 시 직무대행 실시 △연임제 도입 보완책으로 회원조합지원자금의 투명성 강화 등이 기대돼 논란이 일었습니다. 그해 국정감사에서 '셀프 연임' 의지가 있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강 회장은 "현재까지는 없다"고 답변하면서 위증 논란으로 이어졌습니다.
농협중앙회 관계자는 "국회 차원에서 국회의원들이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법안에 대해 거론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다만 중앙회장 연임 추진과 관련해 모종의 입법거래가 있는 것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습니다.
지난달 6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에서 열린 '범농협 신년 업무보고회'에서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인사말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농해수위 "농협회장 셀프 연임 절대 불가"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도 농협 회장 연임 논의에는 선을 그었습니다.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문 의원은 "농협 지방 이전은 국토균형발전을 위한 의원 본인의 소신"이라며 "임기 연장안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셀프 연임은 안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습니다.
농해수위 소속 같은 당 신정훈 의원도 "기본적으로 농협 지방 이전을 통해 지역 균형 발전뿐만 아니라 농가 발전에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면서도 "농협 회장직은 상징적인 권력이 상당한데 법적 통제 방식도 없는 채로 연임제를 허용할 수 없다"고 못 박았습니다.
윤준병 의원은 "농협을 비롯한 공적기관 이전의 필요성에 대해선 다른 의원과 마찬가지로 지역 균형발전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중앙회장 연임과 관련된) 입법거래 등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윤 의원은 비상임이사 연임 제한 등을 담은 '농협 개혁법'을 발의한 바 있는데요. 회장 연임 허용에 대해서도 부정적 입장을 전했습니다.
과거에도 농협중앙회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내용의 농협법 개정안은 꾸준히 발의돼 왔습니다. 윤 의원은 2022년 본사를 전라북도로, 신 의원은 2023년 전라남도로 농협중앙회 본사를 이전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여당에서는 정희용 의원이 2022년 농협중앙회 본사를 서울시가 아닌 '국가균형발전과 지역별 농가인구 등을 고려해 결정한 곳'으로 정하는 것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농협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습니다.
농협중앙회 본사를 지방으로 이전하는 것을 골자로 한 농협법 개정안이 줄줄이 발의되고 있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가 열리는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문성주 기자 moonsj7092@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