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고 때마다 덕지덕지…'누더기' 은행 모범규준

내부고발 활성화 등 땜질식 처방 반복

입력 : 2025-02-14 오후 2:22:37
 
[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금융감독원과 은행권이 내부고발 활성화를 위해 모범규준을 개정키로 했지만, 땜질식 처방만 반복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법률과 달리 강제성이 없다보니 이미 만들어진 모범규준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건이 터질 때마다 손실하겠다고 나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율감독 의존 효과 미미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는 내부고발 제도 활성화 방안을 마련, 은행권 모범규준에 조만간 반영할 계획입니다. '내부고발' 제도의 명칭을 '준법제보'로 변경하는 방안이 거론되는데요. 내부고발자는 배신자라고 낙인 찍는 내부 분위기를 바꾸자는 취지입니다.
 
특히 당국과 협회는 포상금 규모를 대폭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은행권에서는 10억원 상당의 포상금을 지급하는 내부고발 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에서는 지난해 금융권 내부고발자에게 2억7900만달러(한화 약 4000억원)의 포상금으로 사례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금융사의 자율적인 감독체계에 의존하고 있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은행권은 과거 여러차례 '금융사고 예방지침' 등 모범규준을 손질해 내부고발 제도 활성화를 추진해왔습니다. 지난 2010년 모범규준을 제정한 이후 내부자 신고제도 운영조직을 최고경영자(CEO) 또는 상근감사위원 직속으로 설치하고, 실명이 아닌 익명 신고가 가능하도록 보호장치도 강화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부고발자가 신고를 한 사례가 극히 드물고 포상금을 지급한 경우는 더 찾아보기 힘든 상황입니다. 금감원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에서 지난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이뤄진 내부고발 건수는 19건에 불과합니다. 포상금 지급까지 이어진 경우는 1건도 없습니다. 대규모 금융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2023년 이후에도 크게 상황은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금융권 관계자는 "경영진 관리책임, 내부통제 준수의무 강화와 같은 내용은 법 개정 등이 필요한 부분이라 자율감독을 통해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은행 내규가 원론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내부통제 혁신방안의 취지대로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내용으로 반영됐는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는 내부고발 제도 활성화 방안을 마련, 은행권 모범규준에 반영할 계획이다. 사진은 서울 여의도 금감원 모습. (사진=뉴시스)
 
"언제 또 바뀔지 몰라" 혼란
 
금융업권 모범규준의 필요성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당국이 법률 근거를 만들려면 국회에서 입법을 해야하는데 이 과정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당장 급한대로 은행 간 자율 협약을 통해 문제를 예방하자는 것이 모범규준의 취지입니다.
 
그럼에도 모범규준을 강제할 근거가 없다는 점은 고질적 문제입니다. 은행들이 합의한 사항일 뿐 법률이 아니기 때문에 제재가 따르지 않습니다. 일례로 모범규준에서는 내부고발담당부서가 외부채널 등 복수의 접수채널을 운영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외부채널을 운영하고 있는 곳은 전무합니다. 실명 또는 익명 제보 접수도 개별 은행이 선택하도록 했습니다.
 
금융 사고 뿐만 아니라 가산금리 산정 체계, 점포 폐쇄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모범규준을 개정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우후죽순으로 모범규준이 신설되다보니 법적 논란에 휘말리는 사례도 나오고 있습니다.
 
은행연합회의 '대출금리 체계 합리성 제고를 위한 모범규준'은 금융당국의 대출금리체계에 대한 감독 강화방안에 따라 마련됐습니다. 은행들은 '적정한 가산금리 수준'을 결정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하기로 결의했는데요. 공정거래위원회는 은행권의 정보 교환을 '담합'이라고 보고 은행권 현장검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은행권 점포 폐쇄에 따라 소외계층의 금융 접근성이 훼손된다는 지적이 나오자 은행권은 지난 2023년 '점포폐쇄 관련 공동절차'라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했습니다. 은행 내부 의사결정만으로 점포를 폐쇄할 수 없도록 했고, 사전영향평가 수행과 대체 수단을 마련하도록 했습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간이 오래걸리는 법 개정 대신에 모범규준이나 가이드라인 등 땜질식으로 대책을 내놓다보니 은행들도 내규에 보수적으로 반영할 수밖에 없다"며 "말로는 금융사 자율 감독에 맡긴다고 하면서 책임을 떠넘기려는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서울 시내 한 건물에 설치된 시중은행 현금자동입출금기(ATM) 모습. (사진=뉴시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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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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