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실패한 계엄과 탈동원의 과제

입력 : 2025-02-05 오전 6:00:00
지난 해 12월 3일 밤에 벌어진 계엄 소동은 평소에 보기 어려운 한국 사회의 진면목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계엄군의 총칼을 무서워하지 않고 한밤중에 국회로 몰려든 시민들의 모습은 민주주의가 정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였다. 야당도 오랫만에 야성을 발휘해 계엄 해제를 신속하게 결의했다. 대통령 탄핵과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에 모인 젊은 여성들이 부르는 노래를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하는 70, 80년대 민주인사들은 대중 집회에서도 퇴진 대상이라는 본인의 위상을 깨달았다. 국회에서 철수하며 시민에게 사과하는 계엄군 병사의 영상도 세대 교체를 실감하게 했디. 반면에 정권과 군의 고위층 인사들은 구차한 변명만 늘어놓아 초라하고 찌질한 보수의 민낯을 숨김없이 노출했다. 
 
그러나 계엄 선포는 정당했다고 길거리에서 외치는 아스팔트 보수도 만만치 않았다. 이들은 1월 19일 새벽에 윤석열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 서부지법에 난입하여 시설과 기물을 파괴하고 경찰관에게 상해를 입히는 폭동을 일으켰다. 멀쩡한 제도권의 보수파 정치인들도 폭도를 노골적으로 옹호하고 있다. 2000년대 초부터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흔들며 주말마다 서울 세종로에서 군복 차림으로 고함치던 어르신들이 무시할 수 없는 정치 세력으로 인정받은 것이다.                 
  
은퇴한 어르신들이 보수의 행동대로 등장한 이유는 우선 정신적 허전함에서 찾아야 한다. 다수의 고령자는 직장, 가족, 지역사회 어느 곳에서도 일체감을 느끼지 못하고  마음이 불편하다. 이 세대는 고도 경제성장 시대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다. 그러나 이제는 어디를 가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구박덩어리가 되고 있다. 태극기 집회에 가면 동병상린, 이심전심으로 마음이 편하고 기운도 난다.   
 
어르신 세대가 성장하며 군사정권 시절에 겪은 정치적 경험도 중요하다. 초중고에서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으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무조건 암송해야 했다. 고교, 대학 시절에는 군사훈련을 받으며 학도호국단에 편성되었고, 군을 제대한 다음에도 50세까지 향토예비군과 민방위대를 했다. 농촌에서는 아침마다 스피커에서 울려 퍼지는 “잘 살아보세”를 연창하는 새마을노래를 들으며 일제 기상했다. 1972년 10월에 시작된 유신체제는 모든 국민을 군사조직, 준군사조직으로 편성하여 정치적으로 동원했으며, 민주주의의 기초인 자발적 정치참가를 원천 봉쇄했다. 이 세대는 군대 정훈교육 이외에는 제대로 된 정치교육을 받을 기회가 없었다. 
 
1987년 6월의 시민항쟁으로 군사정권이 퇴진하고 제도적 민주화는 진행되었으나 풀뿌리 민주주의의 확산은 느렸다. 민주정부도 감히 새마을운동의 깃발을 내리지 못했다. 1997년에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김대중 정부는 금모으기 운동을 조직해 민심을 수습했다. 정신적으로 군사 조직에서 제대하지 못해 군복이 편한 노병들은 보수파 대중운동의 기반이 되었다. 이는 군사정권 시절에 동원된 국민을 시민사회로 돌려 보내는 탈동원의 과제가 충분히 진행되지 않은 탓이다. 더구나 내일을 모르는 젊은 불안정 고용층도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인정할 여유가 없다. 진정한 민주 사회를 이룩하려면 개혁 과제가 무엇인지 심사숙고해야 한다. 
 
이종구 성공회대 사회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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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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