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스타트업 딥시크(DeepSeek)의 AI 모델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커다란 충격을 안겼습니다. 미국의 제재 속에서도 저렴한 가격에 미국 기업들에 비견되는 성능을 내는 AI 모델을 공개했기 때문인데요.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스푸트니크 충격’(Sputnik crisis)이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스푸트니크 충격이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 쓰일까요? 토마토Pick에서 스푸트니크 충격과 비교되는 기술혁신 사례들을 짚어봤습니다.
‘스푸트니크 충격’이란?
스푸트니크 충격이란 표현은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로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한 사건에서 시작됐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국은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계 1위라는 자부심이 있었는데요. 기술적으로 소련에게 완패한 것은 물론 소련의 핵탄두가 언제든 미국 본토에 떨어질 수 있다는 공포심까지 생겨났습니다. 이에 미국은 우주개발과 과학기술에 보다 적극적으로 투자하기 시작했고, 교육체계도 전면적으로 뜯어고쳤죠. 이는 세계대전 이후 냉전체제가 기술경쟁으로 넘어가는 배경이 됐습니다. 이후 기존 사회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켜 새로운 변화를 촉발한 사건을 스푸트니크 충격, 혹은 스푸트니크 모먼트라고 비유하기 시작했습니다.
‘AI, 인간 넘어설 수 있나’
물음을 던진 슈퍼컴퓨터
과학기술 분야에서 세간에 충격을 안긴 대표적 사례는 바로 딥 블루(Deep Blue)의 등장입니다. 딥 블루는 IBM이 만든 체스 특화 인공지능 컴퓨터인데요. 세계 챔피언이었던 가리 카스파로프를 이겨 파장을 안겼습니다. 사실 양측의 첫 승부는 1996년으로, 당시에는 카스파로프가 4-2의 점수로 승리했는데요. 1년 후인 1997년에는 딥 블루가 3.5-2.5로 승리했습니다. 이로써 딥 블루는 시간 제한이 있는 정식 체스 토너먼트에서 챔피언을 꺾은 최초의 컴퓨터가 됐으며, 이는 인공지능이 기술 개발에 따라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중요한 선례로 남았습니다.
이세돌 이긴 알파고
진정한 AI의 전환점
2010년대 들어 비슷한 사건이 한 번 더 일어났습니다. 이번엔 체스가 아닌 바둑이었는데요.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상대로 이긴 것입니다. 바둑은 체스보다 경우의 수가 많아 기존 AI가 훨씬 접근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평가됐는데요. 그럼에도 알파고는 2016년 이세돌 9단을 상대로 4승 1패로 승리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승리 방식이었는데요. 딥 블루는 초당 2억 개의 수를 계산해 체스에서 가능한 경우의 수를 모두 탐색하는 알고리즘이었습니다. 반면 알파고는 딥러닝을 활용해 개발됐습니다. 인간의 데이터를 참고하는 것만이 아니라 스스로 학습하는 신경망 구조를 활용해 창의적인 수를 두게 됐죠. 딥 블루가 계산능력에서 인간을 압도해 ‘AI가 인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졌다면, 알파고는 AI가 인간과 협력해 사고할 수 있는 파트너로서의 입지를 다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AI가 단순 계산의 기능을 넘어 사고하고, 학습하며,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다양한 산업에 활용될 수 있다는 것도 입증했죠. 알파고의 등장으로 AI 연구와 투자가 급격하게 확대됐고, 이는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발전으로 이어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시대 연 아이폰
아이폰은 2007년 첫 출시 이후 세계 휴대폰 업계의 변화를 선도했습니다. 아이폰이 등장한 이후 휴대폰은 단순히 ‘통화기능이 있는 기계’에서 통화기능부터 MP3, 전자사전 등 다양한 기능을 가진 포켓 컴퓨터로 진화했습니다. 더불어 앱스토어를 통해 모바일 앱 시장이 개방됐고, 각종 앱 개발자들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수 있게 됐습니다. 스마트폰 시장이 확대되기 시작하면서 세계적으로 스마트폰에 기반을 둔 유니콘 기업들이 등장한 것을 보면 그 영향력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직방, 토스, 배달의민족 등 많은 유니콘 기업들이 스마트폰 시장 개방 이후 생겨났죠. 반면 당대 휴대폰 업계를 지배했던 노키아, 블랙베리 등은 스마트폰으로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관련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삼성은 안드로이드를 개발함으로써 격변의 시대에 도태되지 않을 수 있었죠.
딥시크, AI 다극화 여나
상술한 사례들은 한 번 쇼크가 일어나면 업계 전체가 큰 격변을 겪는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스타트업의 AI 모델이 다시 한 번 ‘쇼크’라는 평가를 받은 셈인데요. 딥시크가 주목받는 이유는 여럿 있겠으나, 가장 각광받은 요소는 바로 독보적인 가성비입니다. 제작에 들이는 비용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었기 때문이죠. 외신에 따르면 딥시크 개발에 투입된 비용은 약 558만 달러, 한화로 78억8000만원인데요. 이는 메타(META)가 개발하는 ‘라마(Larma) 3’의 10분의 1에 지나지 않습니다.
근래의 AI 업계는 미국의 몇몇 글로벌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딥시크의 등장은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기업도 AI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여러 의혹이 남아있긴 하지만, 딥시크가 보여준 가성비는 다른 기업들에게도 진입장벽을 낮추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비용문제로 도전하지 못했던 후발주자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이는 빠른 기술 발전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반도체 시장의 위기를 초래했지만, 동시에 AI 시장에 대한 기회도 열어젖힌 것이죠. 다만 정보 유출 우려로 각국이 제한을 두는 건 큰 제약인데요. 과연 딥시크의 충격이 순간의 파문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혁신의 계기, 즉 진정한 스푸트니크 충격이 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안정훈 기자 ajh76063111@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