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왼쪽) 일본 총리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회담 후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두 정상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심각한 우려와 해결 필요성을 표명하고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the complete denuclearization of the DPRK)에 대한 단호한 공약을 재확인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7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한 정상회담 공동성명에서 이같이 발표했습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해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완전한 비핵화' 원칙을 공식 외교문서를 통해 명문화한 겁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지난해 4월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전 일본 총리 정상회담 등 기존 미·일 공동성명에 담긴 것과 같은 표현입니다.
지난달 20일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 취임식 직후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총비서에 대해 "그는 뉴클리어 파워(nuclear power)"라고 표현하면서, 트럼프정부가 미국에 직접 위협인 ICBM(대륙간탄도미사일)만 제거하고, 나머지 북한 핵은 인정하고(동결) 대북 제재를 해제해 주는 '핵군축-스몰 딜' 협상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쏟아졌는데요.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공동성명이라는 높은 수준의 외교문서를 통해, '비핵화' 원칙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보입니다.
트럼프 "김정은과 잘 지내면 큰 자산"
트럼프 대통령은 '비핵화' 원칙을 확인하는 한편, 김정은 총비서와의 대화를 추진하겠다는 뜻도 재확인했습니다. 이날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그는 "북한과 관계를 가질 것"이라면서 "제가 그와 잘 지내는 것이 모두에게 큰 자산"이라고 말한 겁니다. 그는 지난달 23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도 '김정은과 다시 연락을 취해보겠느냐(reach out)'는 질문에 곧바로 "그렇게 할 것"(I will)이라고 답한 바 있습니다.
지난달 20일 취임 이후 현재까지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이번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 내용으로 볼 때,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 의지는 확실하게 전제하되 비핵화 목표를 유지하면서 협상을 서두르지는 않겠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화 의지 표명에 현재까지는 직접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는데요. 다만 김정은 총비서의 발언이나 관영매체 논평을 통해 선을 긋는 모습입니다.
김정은 총비서가 지난 8일 조선인민군창건(건군절) 77주년을 맞아 국방성을 축하 방문하고 장병들을 고무격려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다.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미국이 한반도 격돌구도 근본원인"
김정은 총비서가 지난 8일 인민군 창건 77주년을 맞아 국방성을 방문한 자리에서 "조선반도지역에 상시전개되고있는 미국의 핵전략수단들과 실전수준에서 벌어지는 미국주도의 쌍무 및 다자적인 핵전쟁모의연습들, 아시아판 나토의 형성은 조선반도와 동북아시아지역에서의 군사적불균형을 초래하고 새로운 격돌구도를 만드는 근본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우리 국가의 안전환경에 엄중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고 연설했다고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9일 보도했습니다. 미국이 한반도와 동북아 불안의 근본요인이라고 규정한 겁니다.
그는 이와 함께 "핵력량을 포함한 모든 억제력을 가속적으로 강화하기 위한 일련의 새로운 계획사업들에 대하여 언급하시면서 핵무력을 더욱 고도화해나갈 확고부동한 방침"을 재천명했습니다. 한국과 미국 등의 비핵화 요구에 아랑곳하지 않고 핵능력 고도화 작업을 계속하겠다는 겁니다.
"우크라 문제가 국제정세 기본 축"…트럼프는 조기종결 강조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언급들도 주목할 대목입니다. 그는 "지난해 세계 지정학적 충돌과 대결의 무대로 되어온 가자지대와 수리아(시리아)를 비롯한 중동 위기와 우크라이나 문제가 올해에도 긴장한 국제정세 흐름의 기본 축으로 흐를 것으로 예상"하면서 "우리 군대와 인민은 조로(북러) 사이의 포괄적인 전략적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의 정신에 부합되게 자기의 주권과 안전, 령토완정을 수호하기 위한 로씨야(러시아) 군대와 인민의 정의 위업을 변함없이 지지 성원할 것"이라고 했는데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의 조기 종결을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고,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이 북·미 대화의 본격적 모멘텀이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습니다. 하지만 김 총비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조기 종결될 것으로 인식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따라 올해도 계속해서 러시아를 지원하겠다는 뜻을 밝힌 겁니다. 시점상 트럼프 대통령과 이시바 총리 정상회담 직후에 진행된 것으로 보이는 김 총비서의 국방성 연설은 미·일 정상회담의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공동성명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담겨 있지 않습니다.
8일 나온 <조선중앙통신’> 논평은 조금 더 분명합니다. "우리 국가의 핵 무력은 자주권과 인민의 안전을 침해하고 지역의 평화를 위협하는 적대세력들의 그 어떤 침략기도도 원점부터 신속하게 도려내기 위한 불변의 실전용"이라고 밝힌 겁니다.
북한은 이처럼 각종 연설과 논평으로 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을 비판하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을 직접 명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트럼프를 직접 거명 비판하지 않고 있는 점, 반공의 우두머리라든지 최강경 대미 대응 전략의 표현이 없다는 점 등으로 볼 때 북한이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크게 보면 북·미가 본격적으로 신경전에 들어간 모양새로 보입니다.
황방열 통일·외교 선임기자 hby@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