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건작 예비역 중장이 발간한 『한국군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강군의 조건』. (사진=예스24 갈무리)
세상 어느 분야든 내부 문제점을 제대로 비판해야 발전합니다. 미국 국력이 쇠퇴한다고 요즘 많이 이야기하지만 군대는 여전히 미군이 세계 최강이죠. 미국에서는 군대의 내부 문제점을 아주 활발하게 비판합니다. 한국에서는 군대 내부 문제를 비판하는 글이 많이 부족했는데요. 이번에 강건작 예비역 중장이 『한국군이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강군의 조건』이란 책을 냈습니다.
지은이는 1985년 육군사관학교 45기로 입교해 2023년에 전역했는데요. 전방 부대 연대장, 사단장, 군단장으로 일했고 국방부 장관실 장교, 문재인 정부 국가안보실 국방개혁비서관으로도 근무했습니다. 국방 분야 핵심 직책을 두루 거친 내부자가, 금기를 깨고 한국군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지적했습니다. 초판 1쇄 발행일이 2025년 3월31일입니다.
한국군은 미국 군사력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 기준으로 2024년, 2025년 세계 군사력 순위 5위로 평가받았습니다. 외형이 커졌죠. 그런데 한국군이 실제로 대한민국을 지킬 수 있는가를 자신할 수 없다고 지은이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합니다. 그 이유로 첫째, 잦은 군사 쿠데타와 정치개입 풍토에서 장교들의 군사 전문성이 약해졌으며 둘째, 전시작전권을 갖지 못하고 미군 지휘에 의존하다 보니 한국군 장군들은 전쟁 기획 능력을 키우지 못했으며 셋째, 일본 제국군대의 폭력문화 잔재를 아직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북한, 중국 공산당 '정치 군관'과 흡사한 방첩사 폐지해야
첫째로, 군의 정치적 중립을 엄격하게 확립해야 한다고 지은이는 주장합니다. 박정희, 전두환에다가 노태우 정부까지 준 군사정권으로 본다면 그 기간이 31년9개월입니다. 한국 현대사의 3분의 1이 군사정권이었습니다.
군사정권은 군대를 정치 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군 내부에 정치적 파벌과 사조직이 형성될 가능성이 큽니다. 군의 정치화로 고유한 전문성이 훼손되고 군 내부의 단결과 신뢰가 약해집니다. 군사정부는 군사 전문성보다 정권에 대한 충성도를 기준으로 장교를 승진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군사정권은 제2의 쿠데타를 두려워하며 군대를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속성을 보입니다. 30년 가까이 두 번의 군사정부를 거치면서 한국군 장교단은 정치적 변화에 민감한 집단이 됐습니다. 그 결과 장교단은 군사 전문성이 정체하거나 퇴보했다고 지은이는 분석했습니다.
12·3 계엄 내란 사태를 통해 한국군이 불법적인 정치적 동원에 취약함을 다시 한번 드러냈습니다. 지은이는 병사와 장성까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가족과 공동체의 가치, 대한민국의 소중함을 내면화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군인은 '군복을 입은 시민'이라고 현대 독일군은 규정합니다. 군인이 단순히 명령을 따르는 존재가 아니며 시민으로서 도덕적 책임을 인식하는 자율적 주체임을 인정하는 거죠. 한국군도 인식을 확 바꿔야 한다고 지은이는 제안합니다.
방첩사령부(옛 특무부대, 보안사, 기무사)는 한국군 경쟁력을 망친 대표적인 기구라고 지은이는 지적합니다. 방첩사는 장교 동향자료를 수집하면서 위세를 발휘합니다. 북한과 중국에서 공산당이 '정치 군관'을 두고 군을 통제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런 환경이라면 장교단은 군사 전문성을 쌓기보다 방첩사 요원 눈치를 보겠죠. 방첩사를 폐지하고 범죄 수사와 보안 업무는 다른 기관으로 이관하자고 지은이는 제안합니다.
순수 민간인 국방부 장관을 임명하고 장군 보직 인사 때 국회 견제 기능을 확대하며 군 법무 기능을 강화해 직무윤리를 높이는 등의 정치적 중립 확보 방안도 지은이는 제시합니다.
윤석열씨가 지난 12월3일 긴급 대국민 담화를 통해 비상계엄령을 발표한 가운데 다음날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계엄군이 창문을 깨고 진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미 연합훈련 때 합참 장교는 주도권 없이 관찰자 신세
둘째, 한국군은 평소 경계작전에만 몰두할 따름이며 유사시에 실제로 전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지 못했다고 지은이는 지적합니다.
군대는 평시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억제하되 한편으로 유사시를 철저히 준비해야죠. 그런데 한국군은 휴전선이나 해안으로 침투할 간첩을 막는 경계작전에 온통 몰입하고, 정작 필요한 정규 전쟁 대비는 소홀히 하는 이상한 군대가 됐다고 지은이는 지적합니다. 대다수 외국 군대는 국경이나 해안선 경비는 경찰 같은 조직에 맡기고 군대는 본연의 임무인 전쟁에 대비합니다.
한국군은 전시 작전지휘권을 한국전쟁 이래 75년째 미군에 맡기고 있죠. 한국군 작전 수뇌부가 합동참모본부(합참)인데요. 합참은 전시작전권이 없으니 연 2회 한미연합훈련 때도 주도권이 없고 관찰자 입장이 되고 맙니다. 합참 장교 대부분이 전쟁 연습에 참여할 기회가 없고요. 합참에 오래 몸담은 한국군 고위 장교 대다수는 유사시 전쟁 수행에 관한 기본적인 군사 지식도 관심도 없다고 지은이는 지적했습니다. 놀라운 일이죠. 큰 문제입니다.
셋째, 군대 폭력의 기원인 일본군 잔재를 청산하고 전쟁 윤리를 세워야 한다고 지은이는 제안합니다. 12·3 계엄 내란 막후 기획자인 노아무개 예비역 장군의 수첩을 보면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해 집단학살하려 한 정황이 보입니다. 지은이에 따르면 한국군은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사태를 살펴보고 군이 범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정식으로 노력하지 않았습니다. 그 반대로요. 전투 중에는 민간인 사살이 일어날 수 있다고 어떤 선배 장군이 말하거나,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군이 저지른 범죄를 육군참모총장이 사과하자 다른 선배 장군이 뒤에서 비난하는 것을 들었다고 지은이는 밝혔습니다.
이 책을 보면 시민사회가 민주주의 가치를 체화하고 있는 것과 달리, 적지 않은 장군들은 이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런 풍토 때문에 12·3 계엄 내란 때 장군들이 쉽게 동원된 것 아닐까요?
정부 수립 뒤 현대 한국 육군에서는 일본군과 만주군 경력자가 초대부터 19대까지 참모총장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한국군은 미군의 편제와 장비를 들여왔지만, 정신문화에는 폭력적인 일본 제국군대 잔재가 스며들었습니다. 일본 제국군대는 중일전쟁 때 초토화 작전을 편다고 270만명의 중국 민간인을 살해했습니다. 민간인과 심지어 하급 군인을 상대로 상급자가 즉결처분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미군은 베트남 전쟁 때 저지른 밀라이 양민 학살 사건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전쟁 윤리를 세웠습니다. 우리도 미군처럼 전쟁 윤리를 확립해야 강한 군대가 된다고 지은이는 주장합니다. 군인이 비무장한 우리 국민한테 무기를 사용하면 엄중하게 처벌하고, 군대가 불법에 동원되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보완하자고 제안합니다.
이 책은 미래지향적인 대안을 많이 제시합니다. 인구 감소에 대비한 육군 보완 방안과 전쟁 스펙트럼에 맞춘 군 구조 개편 방안, 한국군 재래식 전력으로 북한 핵을 억지하는 방안 등을 담았습니다. 여러 국방 직책을 거친 최고 엘리트 장교가 문제를 진단했으니, 신뢰성 점수를 주어도 되겠지요.
이 책이 324쪽 분량입니다. 지은이가 기존 문헌을 통해 많은 부분을 파악하고, 여기에 본인의 현장 경험과 문제의식을 덧붙였을 겁니다. 그런데도 인용한 문헌 출처를 본문에 주석으로 달지 않고 책 끄트머리에 참고문헌 목록만 제시한 점은 좀 아쉽습니다. 개정판을 낼 때 보완하면 좋겠습니다. 별 다섯 개 만점에 4.5개를 주고 서평을 마무리합니다.

■필자 소개/박창식/언론인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광운대에서 언론학 석사와 박사를 했다. 한겨레신문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을 지내고 국방부 국방홍보원장으로 일했다. 국방 커뮤니케이션, 말하기와 글쓰기, 언론 홍보와 위기관리 등을 주제로 글을 쓰고 강의하고 있다.